얼마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꿀벌들의 발이 묶이면서 농작물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는 내용이 보도됐습니다.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스(FT)는 가루받이를 담당하는 꿀벌들의 수송이 제한되면서 미국, 유럽, 인도 등 전세계 주요 농산물 생산국에 비상이 걸렸다고 전하기도 했는데요. 꿀벌은 흔히 알려진 과일뿐 아니라 채소, 견과의 수분까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FT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3분의 1가량이 꿀벌에 의한 수분에 의존할 정도라고 합니다.
사실 꿀벌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건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7년 유엔(UN) 발표에 따르면 현재 지구촌 야생벌 2만종 가운데 8,000종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미국을 비롯 유럽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도 꿀벌의 30~40%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2016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토종 꿀벌 7개 종이 멸종위기 생물로 지정됐지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토종 꿀벌이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한 상태라고 하는데요.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전국 토종꿀벌의 벌통 수는 42만개였으나 지금은 3만~10만개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고 합니다. 지금 추세라면 오는 2035년엔 꿀벌이 완전히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과학자들의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각국의 꿀벌 살리기 노력도 분주합니다. 영국에서는 멸종위기 꿀벌을 살리기 위해 꿀벌 친화적 통로인 ‘B-라인’을 만들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저버'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는데요. B-라인의 규모는 영국 전역에 걸쳐 3㎞폭으로 총 4만8,000㎢에 달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특히 일부 토종 꿀벌이 멸종 위기에 처할 위험에 놓여 있는데, 이는 대규모 농업과 도시 개발로 1940년대 이후 야생화의 97%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선단체인 앤드류 화이트하우스는 6년 전부터 정부와 시민단체, 지역 관계자, 자원봉사자들과 손잡고 B-라인을 만들어왔고요, 올해부터는 정부 보호단체인 버그라이프와 영국 데본 지역을 중심으로 야생화로 만드는 B-라인을 복구하기로 했습니다. B-라인은 영국 전역을 가로질러 야생화가 서식하거나 잠재적으로 서식할 만한 곳을 지도로 만드는 겁니다. 앤드류 화이트하우스에 따르면 지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영국 내 곤충의 40~70%가 멸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버그라이프를 이끄는 캐서린 존스는 “B-라인은 곤충이 줄어드는 것을 막고, 꽃가루 매개자들을 돕는 획기적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올해 말까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 아일랜드 지도가 완성되면 B-라인은 영국 전 지역을 포함하게 되는데요. B-라인의 실제 성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B-라인 서쪽인 브리스톨 남부에서는 지난해 멸종위기 곤충이 늘었는데, 이 지역은 자원봉사자들이 야생 당근과 미나리과 식물을 포함해 야생화를 서식하는 곳으로 탈바꿈 시킨 곳입니다.
멕시코에서는 올해 1월 남부 오악사카에 20만 그루의 해바라기를 심고 벌이 쉴 수 있는 벌집도 마련했다고 합니다. 건조한 날씨 때문에 꿀벌의 식량원이 사라진 건데 다행히 해바라기가 대체 식량원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해바라기는 번식력이 강해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데다 꿀이 많아 벌을 유혹하기 좋다고 하는데요. 카를로스 가르시아 농업생태학 엔지니어는 “해바라기는 꿀벌뿐 아니라 다른 꽃가루 매개자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꿀벌이 다시 돌아오도록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유럽연합(EU)은 단계적으로 꿀벌을 죽음으로 모는 성분이 들어간 살충제 사용을 금지해왔고요. 미국 백악관은 2015년 5월 꿀벌을 비롯한 꽃가루 매개 곤충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범국가적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2010년 꿀벌에 치명적인 ‘낭충봉아부패병’이 전국을 휩쓸면서 토종벌의 98%가 폐사했다고 하는데요.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국유림을 중심으로 한 밀원(蜜源)수림을 조성하고, 토종 꿀벌에 악영향을 주는 외래종인 등검은말벌을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해 양봉 농가의 피해를 줄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밀원식물을 조사하는 등 적극적 대처는 아직 모자라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무엇보다 꿀벌을 살리기 위해선 일반인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국내에서는 소셜벤처인 ‘어반비즈서울’이 도심에서 개인이나 기업과 손잡고 벌을 키우고, 도시 양봉가를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서울숲, 한강, 여의도 스카우트 빌딩 등 18곳에 도시 양봉장을 운영하면서 꿀벌 살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부터는 ‘꿀벌구조대’를 만들어 소방관들도 돕고 나아가 꿀벌도 돕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박찬 어반비즈서울 이사는 “매년 소방관들이 꿀벌의 분봉과 말벌집제거로 인해 출동하는 건수가 15만건, 사회적 비용은 225억원에 달한다”며 “꿀벌구조대는 소방서로부터 연락을 받은 후 현장에 출동해 꿀벌을 구조하고 도시양봉장으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현재는 서울 성동구에서 시행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지역을 늘리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꿀 300㎏이 수확되기도 했는데요.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국회 사무처에 ‘국회 양봉환경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2월말 도서관 옥상에 꿀벌 90만마리가 서식하는 양봉장이 들어섰고, 올 봄 이 꿀벌들이 모은 꿀을 수확했다고 합니다. 수확된 벌꿀은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 서있던 대구경북 의료인과 국회 공무직 근로자 등에 전해졌다고 하네요.
앞서 언급했듯 우리가 먹는 곡물과 과일의 3분의 1은 벌의 수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에게 꿀벌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벌의 개체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요, 기후 변화와 대규모 농업으로 인한 서식지 감소, 그리고 과도한 살충제 살포 때문이라고 합니다.
2017년에는 유엔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세계 꿀벌의 날’이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세계 야생식물과 식량이 생산되는데 필수적인 매개체인 꿀벌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보호 대책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지구에서 멸종한다면 인간도 4년 안에 사라지게 될 거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곤충인 꿀벌, 멸종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임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