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하기로 예정된 날이다. 25년 전부터 공수처를 설치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초로 공수처 법안이 나온 것은 1996년 김영삼 대통령 때다. 제15대 국회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설치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에 공직부패수사처 법률안을 직접 제출하기도 했다. 2012년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냈다. 노회찬 의원 역시 2016년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법안을 발의했는데, 그 제안이유를 보자.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현직 검사장이 120억원이 넘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긴급체포되어 구속되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졌음. 그리고 전직 검찰 고위 간부가 15억원이 넘는 세금을 탈세한 혐의로 기소되고, '몰래 변론'등 전관예우 비리를 통해 수백억 원의 사건수임료를 벌어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
이처럼 검사의 비리를 수사하자는 법안이 주기적으로 제출되었음에도 검찰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공수처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공수처는 여러 고위공직자 중 검사의 범죄를 주된 수사대상으로 한다. 검사는 인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막중한 직무를 수행하기에 공정성과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 검사선서문도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는 것이 검사의 사명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뇌물수수, 폭행, 성범죄 등 고위공직자에게 기대할 수 없는 사건을 저지른 검사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이런 검사들로 인하여 묵묵히 본분을 다하는 청렴한 검사의 존재까지 가려지게 되었다. 성경에는 과실로 살인을 하고 도피성으로 들어가면 처벌을 면해 주는 제도가 있다. 검사가 고의로 범죄하고 직권을 남용해도 검찰 조직은 검사들의 도피성 역할을 해 주었다.
검찰은 약자를 단죄할 때는 추상 같고, 스스로의 잘못에는 너그러웠다. 이런 부패문화가 고착된 것은 검사를 수사할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검찰 스스로 공수처법을 만들어 낸 셈이다. 검사의 범죄가 원인이 되어 제정된 법이 또 있다. 검사가 2012년에 벤츠 승용차 등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법원은 사랑의 증표로 금품을 받았다고 변명하는 검사의 변명을 받아들여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현직 검사가 돈을 받고도 처벌되지 않는 현실에 국민은 실망했다. 그리하여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려고 2015년에 청탁금지법이 제정되었다. 그래서 벤츠 검사의 운명적 사랑이 김영란법을 낳았다고 한다.
공수처 신설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만큼 검사의 비리가 많고 정권교체까지 시도해 볼 정도로 검찰 권력이 비대했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태생적으로 정의로운 기관일 수는 없다. 공수처 검사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 다른 수사기관에서 견제할 수 있다. 그래서 공수처는 검찰처럼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되기 어렵다. 공수처의 검사는 3년 계약직에 불과하며 법이 허용한 3회 연임도 불확실하다. 공수처 구성원은 25명의 검사와 수사관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조직체다. 공수처 검사는 영장청구도 할 수 있어 독립적 수사도 가능하다. 헌법상 영장청구권자인 '검사'는 검찰청법의 검사, 군검사, 특별검사에 이어 공수처 검사까지 확대되었다. 이제라도 공수처가 검사를 수사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로든 특권층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정신에 합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