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시작ㆍ불참 파행… 최저임금위, 예상된 졸속 결정

입력
2020.07.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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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상 내실 갖춘 토의 과정 거칠 수 없어
"코로나 상황서 더 서둘러 회의 시작했어야"
최임위 이원화해 내실ㆍ투명성 높일 대책 시급

올해 개최된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역시 예년처럼 파행을 피하지 못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14일 새벽 표결 끝에 시간당 8,720원으로 결정됐지만, 노동계가 빠진 반쪽 짜리 결과라 앞으로 정당성 시비는 불가피하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극심한 노사 갈등을 줄이려면 심의의 내실을 기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개선안은 여야 대립으로 진전이 없다.

최임위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각 9명씩 총 27명이 참여하는 구조다.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현 구조에선 대체로 정부가 추천한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한다. 올해 표결에서도 노ㆍ사가 더 이상 간극을 좁히지 못하자 공익위원이 시간당 8,720원을 제시했고, 근로자위원이 퇴장한 채 공익ㆍ사용자위원만 남아 찬반 투표를 했다. 이처럼 노사간 이견차로 아예 공익위원안이 최저임금으로 결정된 경우는 1988년 제도 시작 이래 총 33회 중 18회로 절반이 넘는다.

최임위가 매번 심의기한에 임박해 시작되는 관행도 공익위원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해 최임위는 근로자위원 위촉 등이 늦어지면서 지난달 11일에야 1차 전원회의를 시작했다. 첫 회의가 사실상 상견례임을 감안하면, 심의기한(6월 29일)을 불과 나흘 앞둔 지난달 25일 2차 회의에서야 정식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더욱이 노동계가 불참ㆍ파행을 반복하면서 총 9차례 전원회의 중 노ㆍ사ㆍ공익위원이 모두 참여한 건 단 4차례 뿐이었다. 노ㆍ사가 각계 입장과 근거를 제시하는 ‘회의다운 회의’는 절반도 안 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장외 여론전에 바쁜 노동계와 경영계대신 최임위를 지킨 정부측인 공익위원이 결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같은 졸속 심사가 반복되자 정부도 지난해 최임위를 이원화해 심도 깊은 논의를 유도하는 내용의 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이 안에 따르면 최임위에 전문가 9명으로 이뤄진 ‘구간설정위원회’를 신설한 뒤 이들이 상시적으로 분석한 최저임금의 노동시장 영향을 바탕으로 최저임금 상ㆍ하한 구간을 설정하면, 현행 최임위와 같은 ‘결정위원회’가 그 안에서 최종 결정을 하는 구조를 띄게 된다. 이는 노사의 힘겨루기로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는 데다, 최저임금 결정에 객관적인 지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현행보다 합리적 결정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러한 개편안을 담은 정부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지만, 야당이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적용’ 등을 더할 것을 주장하며 대립이 심화해 더 이상 논의되지 못한 채 결국 폐기됐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노사간 대립이 필연적이었던 만큼 최임위가 더 일찍 회의를 시작해 책임있는 결정을 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론 공익위원들조차 고시 기한 맞추기에만 급급했다”며 “지금처럼 보여주기식 회의만 거듭하는 상황에서 저임금근로자 보호대책이 진지하게 논의됐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세종=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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