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박원순 고소 사실 靑에 즉시 보고... 靑 "朴측에 알려준 적 없다"

입력
2020.07.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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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 고소 사실 알고서 극단적 선택 가능성
경찰ㆍ청와대 누설 의혹 부인하면서 '진실게임'


고(故)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 고소장이 접수된 당일, 경찰이 청와대에 고소 사실을 보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소 당일 혹은 다음날 오전 박 시장에게도 고소 사실이 전달된 정황이 나오면서, 극비리에 부쳐져야 할 성범죄 고소 상황이 피고소인에게 바로 전달됐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고한 경찰과 보고 받은 청와대는 모두 수사상황 누설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13일 성추행 의혹 고소인 A씨 측과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변호사와 함께 8일 오후 4시 30분쯤 서울경찰청에 박 시장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A씨 측은 고소장에 성폭력특례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형법상 강제추행 죄명을 적시했다. 고소장을 제출한 직후 A씨는 다음날 새벽 2시30분까지 밤샘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성추행 피해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A씨의 휴대폰을 포렌식해 나온 사진 자료 등도 제출했다.

A씨 측은 고소 내용이 박 시장에게 바로 전달됐다고 주장한다. 박 시장이 고소인 조사가 끝난 지 8시간 지났을 무렵인 오전 10시 44분쯤 서울 종로구 가회동 공관을 나와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에, 이를 알지 않고서는 그런 선택을 했을리 없다는 주장이다.

박 시장에 대한 고소 내용은 경찰을 통해 청와대에도 전달됐다. 경찰은 당시 박 시장에 대한 고소 사실이 서울경찰청을 거쳐 본청까지 보고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이후 경찰청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을 통해 사건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고소 사건이 경찰청 상부로 보고되고, 그것이 박 시장에게 바로 전달된 흔적이 있다"며 경찰 수뇌부 또는 청와대의 누설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 고위관계자는 "원래 주요 고소·고발건은 지휘부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며 "다만 박 시장에게 피소 사실을 알려준 적은 없다"고 했다. 청와대도 이날 "관련 내용을 박 시장 측에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고소인 측은 수사기관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며 "누가 국가시스템을 믿고 위력 성폭력 피해를 고소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경찰이 박 시장의 피소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내리면서 피소 사실 유출 과정을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이 성추행 관련 수사 상황을 유출했을 경우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해 2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게 된다.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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