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입력
2020.07.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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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은 가장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도덕적 명령의 형식이다. 선을 앞세우고 악을 물리쳐야 한다는 당위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도덕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석적인 논의가 뒤따라야 하겠으나, 선과 악이 서로 격렬하게 다투는 상황에서 항상 선의 편에 서야 한다는 명령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덕을 행하는 자는 선을 선택하는 자이다. 

도덕은 선택의 문제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선택에 얽힌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헤라클레스가 18세가 되던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전하는 크세노폰의 표현을 빌리면 "그가 어린이로부터 이제 청년으로 들어서는 시기"였다. 덕성과 악덕, 달리 표현하면 선과 악을 상징하는 두 여인이 방문하여 그가 누구를 선택할지 물었다. 악덕의 여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헤라클레스여, 내가 보니, 당신은 인생에서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아직 확신이 없군요. 나를 친구로 삼으세요. 그리고 나를 따라오세요. 정말 즐겁고 편안한 길로 당신을 인도할게요." 덕성을 상징하는 다른 여인도 헤라클레스 앞에 섰다. 선을 선택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종국에는 명예와 참된 행복으로 가득한 불멸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설득한다. 헤라클레스는 결국 선과 덕성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고통스러운 과업들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종국에 그는 용맹함과 지혜를 모두 갖춘 불멸의 신이 되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영웅적인 폴리스 스파르타를 건설했다. 

도덕이 선택의 문제이니 그것은 또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세상에 바람직하고 훌륭한 것들은 차고 넘친다. 악덕 또한 덕성에 이르는 불가피한 수단으로 언제나 우리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달콤한 것들을 모두 가질 수 없다. 그러니 가치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어떤 것은 선택하고 또 다른 것은 버릴 수밖에 없다. 성서는 이 점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그러니 도덕과 가치는 항상 우선순위에서 표현된다. 개인이나 공동체가 무엇을 앞세우고 무엇을 뒤로 미루느냐를 보면 무엇을 최상의 가치로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가치는 모호한 말이 아니다. 가치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value는 라틴어 동사 valere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 valere의 근본 의미는 잘 지내고 잘 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가치라는 것은 결국 삶의 행복과 안녕에 기여하기 때문에 우리가 욕구하는 바를 지시한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의 문제는 그 사람이 무엇을 행복으로 여기고 있는가의 문제이고 이는 결국 그 사람의 선택에서 어떤 우선순위가 작동하는가의 문제이다. 우리 시대의 헤라클레스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 해리 포터에게 덤블도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충고했던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해리,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을 통해서 나타나는 거란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는 그래서 가치의 문제를 지배의 문제로 보았다. 플라톤이 이성과 기개와 욕망이라는 내면의 세 가지 힘을 논구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단순히 세 가지 요소의 생김새가 아니라 그 요소들이 각각 지배적 힘을 발휘했을 때 우리 안에 가치 서열이 결정되는 양상이었다. 선택은 가치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배구조를 통해서 결정된다. 

우리 시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대의 혼란은 여러 도덕과 가치를 호출해내고 있다. 상이한 도덕적인 가치들을 소리 높여 외치는 온갖 빛깔의 포스터들이 온라인 공간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각자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목표들이다. 그러나 그 모두를 한꺼번에 지향할 수도 없고 한꺼번에 소유할 수도 없다. 물론 버리기 아깝다는 이유로 돌아가면서 돌볼 수도 없다. 매번 가치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면 그 공동체는 사실 지향하는 가치가 없거나 그것을 지향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선택은 불가피하고 그것은 우리의 가치를 표현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 시대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놓여 있는가?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김수영 철학박사ㆍ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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