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은 지난 2016년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우산을 챙기거나 외투를 챙기는 정도의 영향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당시 2조원을 들여 미국 최대 날씨정보업체 웨더컴퍼니를 인수하면서 날씨만 잘 알아도 어떤 상품이 얼마나 팔릴지 내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IBM의 청사진이 점차 경영 현장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농업처럼 날씨와 직결된 산업군뿐 아니라 식자재 매입 시점에 따라 판매 가격이 출렁이는 마트업계, 예상보다 겨울이 춥지 않으면 재고를 떠안아야 하는 홈쇼핑업계까지 '날씨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13일 이마트는 오는 16일부터 올해 첫 수확한 감자를 판매한다고 알리면서 가격표를 2㎏당 1,980원으로 내걸었다. 올해 6월 이마트 감자 2㎏ 평균 판매가격은 5,980원이었다. 66%나 낮은 가격으로 책정된 것이다.
저렴한 가격 설정이 가능한 이유 뒷면에는 빅데이터 분석이 있다. 이마트는 지금까지 판매한 감자 가격과 감자를 매입한 시점 등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분석했고, 특정 시기에 감자 가격이 크게 올라가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을 알아냈다. 원인은 '날씨'였다. 장마와 폭염이 오면 감자의 신선도가 낮아지고 썩는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에 팔 수 있는 감자를 골라내는 선별 비용이 크게 증가하는 탓에 감자 가격 역시 오른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를 기반으로 이마트는 올해 이른 장마와 무더위 때문에 감자 값이 오를 것이라는 예측에 도달했다. 지난해 3월 초 파종 시기보다 12일 이른 2월 말 감자 파종을 시작한 이유다. 감자 수확도 지난해보다 13일 이른 6월 20일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장마와 폭염을 피해 파종과 수확시기를 앞당긴 덕에 생산비용을 낮추면서 경북 구미(200톤)와 영주(200톤), 충남 부여(400톤) 등 총 800톤의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됐다.
롯데홈쇼핑은 IBM과 손잡았다. 계절 변화에 민감한 패션 등을 판매하는 홈쇼핑업계는 기존에도 날씨 데이터를 활용하기는 하지만, 보통 단기 예보 중심의 자료와 상품기획자들의 경험에 의존해야 했다.
단기 예보 중심으로 기상을 예측하면 '1월 중순 온도는 영하 15도' 식으로 10일 단위 기온 정보만 알 수 있다. 예측 기간과 날씨 정보가 세분화돼 있지 않아 예보가 어긋나면 즉각 대응을 하기 힘들다. 1월 중순 영하 15도 예보와 달리 이상 고온 현상이 이어지면 예보만 믿고 롱패딩 수량을 많이 주문해 둔 홈쇼핑 업체의 재고 부담만 커지는 것이다.
롯데홈쇼핑은 6~7개월 단위 매일의 최고, 최저, 평균 기온 및 강수량에 대한 IBM의 예측값을 활용해 날씨에 기반한 수요 예측 모델을 함께 개발하게 된다. 단순 옷 종류뿐 아니라 날씨에 영향을 받는 상품군을 도출해 장기적인 매출 변화를 예측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방송을 기획하면 매출 증진과 운영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게 두 회사의 설명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상 기후나 급격한 계절 변화 등 기상 불확실성이 커져 정확한 날씨 데이터에 기반한 경영 관리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박송미 한국IBM 상무는 "기상 정보는 에너지, 항공, 금융, 공공 등 모든 산업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라며 "특히 유통 분야는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수요 예측, 가격 정책, 재고 관리, 마케팅 계획 수립에 날씨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