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 안희정 전 충남지사 모친상 조문 논란, 성추행 혐의가 제기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까지 젠더 이슈로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으나 성평등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입을 닫았다. 일각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여가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낮은 성인지 감수성,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지난 일주일 간 여가부는 이렇다 할 메시지를 한번도 내놓지 않았다. 이정옥 장관이 10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손 씨와 관련해 "1년6개월이라는 형량이 약하다는 여론이 많았고 오죽해서 미국이 송환해 조사해야 한다고 요청했겠느냐"며 언급한 정도에 그쳤다. 세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한국일보의 질의에도 여가부는 13일 손 씨건에 대해서만 "범죄인인도심사 청구에 대한 법원의 결정에 관해 행정부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는 틀에 박힌 답변만 내 놓았다.
이는 2년 전 '미투(Me Too)운동' 시작 때 여가부가 적극적인 피해자 지원 방침을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미투운동이 거세게 일자 정현백 당시 장관은 "미투 운동 이후 피해자들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후 김지은씨가 안 전 지사를 성폭행 혐의로 고발했고, 그해 8월 1심 재판에서 안 전 지사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여가부는 무죄 판결 사흘만에 '안희정 전 지사 사건 판결 여가부 입장'이라는 서면 논평을 내 피해자 편에 섰다. 논평에서 여가부는 "이제 1심 재판이 끝난 상황이므로 향후 진행될 재판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여가부는 피해자의 용기와 결단을 끝까지 지지할 것이며 관련 단체를 통해 소송 등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로 인해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며 '미투' 운동 또한 폄훼되지 않고 지속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2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여가부의 미온적인 대응에는 '청와대 눈치보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여성비하 논란, 안 전 지사 성폭력 사건 등 여권 인사들의 젠더 의식 문제와 성폭력 사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을 청와대가 불편해 했다는 것이다. 한 여가부 관계자는 "(2년 전) 당시 안 전 지사 판결에 대한 여가부 논평 후 대변인이 경위서를 썼다"고 귀띔했다.
그렇기에 갈수록 여가부는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여가부는 성평등 문제를 다루는 주무부처인데도 정현백 장관 이후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가 전달돼야 할 때 선도적으로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젠더 정의와 관련된 한국 사회의 방향을 전달하는 역할은 거의 포기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는 "고위공직자 성비위 문제가 터지는데, 여가부는 관련 전수조사라도 하겠다고 나서야 하지 않나. 여가부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해 태스크포스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