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문을 놓고 대한민국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다. 인권 변호사, 시민운동가, 3선의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 업적을 기리는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지만,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그의 장례가 서울특별시장(葬)으로 닷새간 치러지는 데 대한 위화감과 거부감도 상당하다.
12일 현재 ‘서울특별시장(葬) 반대’ 국민청원 서명은 50만명을 넘어섰다. 5일장과 시민분향소 설치가 피해 여성을 배려하지 않았고, 박 전 시장의 안타까운 죽음과 별개로 성추행 의혹은 규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미래통합당도 "박 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서울특별시장은 피해자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 가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분위기는 민주당이 '미투' 사건을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서 비롯됐다. 실제 민주당은 아직까지 여성의 성추행 피해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이해찬 대표가 당 차원의 대응을 묻는 기자 질문에 “예의가 아니다” “후레자식”이라며 쏘아붙인 것도 고인의 성추행 의혹을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여권내 분위기로 해석되고 있다.
박 전 시장의 생전 발자취와 업적이 미투 사건으로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성범죄에 대해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을 해야 할 공당이 의혹 거론 자체를 고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문제다.
지금 여권에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 ‘애도 모드’가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 재발을 방지하려는 노력이다. 더군다나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의 성범죄가 발생한 게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민주당은 내부에 왜곡된 성도덕 의식이 만연한 게 아닌지 돌아보고, 반성과 쇄신 약속을 하는 게 정상이다. 같은 진영이라는 이유로 침묵하고 애도 분위기에 편승해 적당히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면 언제든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