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양보’ 9년 만에… 조문 않는 사이 된 故박원순ㆍ안철수

입력
2020.07.13 08:00
안철수, 내년 서울시장 보선 도전 여부 관심


 ‘영원한 편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정치권에서는 통용된다. 고인이 된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관계도 그렇다.

안 대표는 11일 페이스북에서 박 시장 죽음과 관련해 “고인의 죽음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별도의 조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장례가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지는 데 대해서도 안 대표는 “공무상 사망이 아닌데도 서울특별시 5일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나라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고위 공직자들의 인식과 처신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야권 인사들은 박 시장 빈소에 조문을 가지 않고 있다. 성추행 피소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안 대표의 조문 거부는 다른 야권 인사들의 행보와 달리 눈길을 끈다. 정치인으로서 두 인사의 인연 때문이다. 조건 없는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로 ‘아름다운 양보’라는 수식까지 붙었던 박 시장과 안 대표. 어쩌다 둘은 마지막 가는 길도 돌보지 않는 사이가 됐을까.

"조건 없이 단일화" 지지율 50%의 통 큰 양보

안 대표와 박 시장 간 정치적 인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사와 벤처기업인, 대학교수를 지내며 업적과 인지도를 쌓은 안 대표는 당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지게 된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정계에 발을 들이지 않은 상태였지만,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최고 50%에 육박해 그의 출마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안 대표의 선택에 세간의 관심이 쏠려 있던 2011년 9월 5일, 그는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출마 양보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리고 이튿날 안 대표는 박 상임이사와 만나 후보 단일화를 전격 발표했다. 단일화를 결정하는데 걸린 대화 시간은 단 17분이었다. 안 대표는 단일화 결정 뒤 “단일화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없다. (저는) 출마 안 하겠다”며 “꼭 시장이 되셔서 그 뜻 잘 펼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안 대표와의 단일화 이후, 5% 안팎에 불과했던 박 상임이사의 지지율은 50%대로 수직 상승했다. 안 대표 지지율을 그대로 흡수한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박 상임이사는 10월 26일 치러진 선거에서 53%의 압도적 득표율을 얻어 서울시장이 됐다.


양보 후 7년 만에 '도전자' 된 안철수

안 대표와 박 시장은 이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에 함께 몸담기도 했다. 하지만 안 대표가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한 뒤로는 줄곧 다른 정치적 행보를 이어왔다. 

각자의 길을 가는 듯했던 안 대표와 박 시장은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맞붙었다. 후보 단일화를 한 지 7년 만에, 안 대표가 현역인 박 시장에게 도전하는 입장이 된 것이었다. 안 대표는 7년 전 양보를 뒤집고 박 시장과의 경쟁에 나서게 된 데 대해 “그땐 박 시장이 잘 하실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꼭 필요로 하는 큰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당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선거에서 안 대표는 19.55%를 얻어, 52.79%였던 박 시장 득표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박원순 후임' 거론되는 안철수... 선택은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갑작스러운 박 시장의 유고에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후보군에 대한 하마평에 안 대표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안 대표의 시선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보다는 2022년 대선을 향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하지만 그가 직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는 점에서 내년 재도전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내년 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선거 결과가 2022년 대선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야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거물급인 안 대표가 보궐선거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관계자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안 대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경우 박 시장과의 인연은 또 다시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이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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