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가 내년도 최저임금의 1%대 삭감을 고수하면서, 막바지에 다다른 최저임금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노동계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에도 2% 이상 최저임금을 인상했다며 반발하고, 경영계는 동결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이라고 버티고 있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늦어도 오는 15일을 전후로 내년도 최저임금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을 심의ㆍ의결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가 1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8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이어간다고 12일 밝혔다. 13일은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의 1차 기한으로 제시한 날이다. 이번 회의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저임금이 노사간 밤샘 협상 끝에 결정돼 온 관행을 고려하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14일 새벽 의결될 가능성이 크다.
경영계가 이번에도 삭감안을 내밀지,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해 좀 더 진전된 안을 내놓을 지가 13일 회의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경영계는 최초 요구안, 첫 수정안 모두 삭감안을 제시했다. 최초 요구안에서는 올해(8,590원)보다 1.2%를 깎은 8,410원을, 지난 9일 열린 6차 전원회의에서는 1.0%를 삭감한 8,500원을 제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유례 없는 경제 위기라는 게 주된 이유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 여파로 한국 경제의 역성장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게 인하 요구의 핵심"이라며 "이미 한국은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이 60%를 초과하는 등 국제 시장의 다른 경쟁국에 비해 최저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인상 속도도 빠른 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삭감안 자체가 "최저임금제도의 취지와 원칙을 훼손한다(민주노총)"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6차 전원회의에서도 이에 항의하며 근로자위원 전원이 퇴장했다.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지난 30여년간 최저임금은 삭감은 물론, 동결된 전례가 없다. 공익위원들이 앞서 사용자위원 측에 삭감안보다 전향적인 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이유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아주 어려운 외환위기 직후에도 최저임금을 2% 이상 올렸다"며 "최저임금은 취약계층 소득 증대의 유력한 통로로 양극화를 완화하는 수단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은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각각 2.7%, 2.75% 인상됐다.
민주노총의 8차 전원회의 참석 여부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민주노총은 경영계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전원회의에 불참한다는 방침이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되는데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은 9명 중 4명이다. 이들이 불참하면 노동계는 한국노총 추천 위원 5명만 남아 수적으로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위 사용자위원 간사인 류기정 경총 전무는 이에 대해 "경영계는 최소한 동결이라는 입장"이라며 "노동계가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사회적 대화기구에 안 들어오겠다고 하는데, 이는 협상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해마다 노사간 대치가 장기화하는 등 최저임금위 회의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처럼 노사 협상식으로 결정하기 보다는 1년 내내 활동하는 상설 전문 기구를 설치하고, 여기서 물가, 산업ㆍ경제구조 변화 등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한 범위에서 노사가 최저임금을 협의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