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민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0시1분께 숨진 채 발견되면서 우리사회에 큰 충격과 숙제를 남겼다.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가로 그리고 '열린 행정가'로 한평생을 세상에 쏟아 부었던 그가 성추행 의혹 고소 직후 비극적 선택을 한 것을 두고 한국사회 내부 갈등도 분출되고 있다. 죽음에 대해서는 애도가 마땅하다는 말도 지금은 쉽게 통하지 않는다. 그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남겼을지 모르는 상처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박 시장이 떠나고 남은 곳엔 그에 대한 애도와 경멸, 안타까움과 배신감이 뒤섞였다. 사태에 당당히 맞서지 않고 회피하려는 듯한 식의 마무리는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는 동시, 마땅히 밝혀졌어야 할 수도 있는 진실을 미궁에 빠뜨린 책임감 없는 행태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작성 당일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명의 서명을 훌쩍 넘겼다. ‘소통령’으로 통하는 수도 서울의 수장이 부하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마당에 성대한 장례식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인간 박원순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기도 할 테다.
박 시장은 한국사회 탈권위와 평등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 인권변호사로서 ‘서울대 우 조교 사건’ 등 여성인권 관련 사건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1990년대 '참여연대' 설립을 이끌며 척박한 시민사회에 물을 댔다. 2011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뒤엔 '반값등록금'과 무상급식 등의 정책을 실험하며 청년 등 사회적 약자와 함께했다. 그 덕에 한국의 시민사회는 더 깊이 뿌리 내릴 수 있었고, 많은 자리에 꽃도 피워냈다. 시민사회의 맏형, 대부, 기둥으로 불렸던 그다. 그랬던 그에게 붙은 성추행 의혹은 그의 과거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자 모순이다. 맏형을 잃은 황망함에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지만 동시에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이유다. "믿었던 박원순마저…."
박 시장의 죽음은 도덕성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시민사회, 시민운동에 큰 숙제를 남겼다. 비주류였던 시민운동 세력이 제도권으로 날아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도덕성’이라는 날개였다. 김헌식 시사평론가는 “박 시장 사망은 ‘견제 주체’ 세력이 견제 받는 위치로 자리바꿈 한 상황에서 일어났다”며 “자기검열에 더욱 철저해야 할 변곡점에서 일어난 비극이라 파장은 깊고 오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향후 대응은 민주화나 시민운동 세력에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피해 여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민주ㆍ진보 세력과 여성 운동 진영이 분리될 수 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주류세력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 시장 등 권력이 된 '저항세대'의 이율배반적 행보는 ‘과연 그들이 이뤄냈다고 자부하는 민주주의가 모두 평등하게 권리를 누리는 토대에서 이뤄졌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67자의 단문을 남겨놓고 떠났지만, 그의 극단적 선택이 어떤 식으로든 존중 받거나 양해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극단적 선택은 정당한 '책임'을 질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할뿐더러, 그가 가졌던 정치ㆍ사회적 위상에 비춰봐도 온당치 않은 마무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특히, 그의 죽음으로 인해 고소인 등 사건 관계자에 대한 ‘신상털기’가 시작되는 등 '2차 피해'가 현실화 한 상황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명을 내고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박 시장은 과거를 기억하고, 말하기와 듣기에 동참해 진실과 마주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길에 무수히 참여해왔지만 정작 본인은 그 길을 닫는 선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