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난 극복 전략으로 정부가 야심차게 제시한 건 다름아닌 '한국판 뉴딜'이었습니다. 정부는 14일 국민보고대회를 열어 한국판 뉴딜 관련 종합계획을 직접 발표하기로 했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변화와 4차 산업혁명에 맞춰 미래세대를 위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혁신을 이루자는 취지입니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양대 축으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제시했어요.
여기서 등장한 뉴딜이라는 단어에 눈이 갈 수밖에 없죠. 역대급 글로벌 바이러스인 코로나19의 위기 극복을 위해 꺼내든 정부의 카드에 핵심 키워드로 쓰였으니까요.
뉴딜의 역사는 꽤 깁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1933~36년 대공황으로 침체된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고자 추진한 것이 시작입니다. 당시 뉴딜은 침체된 경제를 부흥시키고 실업자들의 생활을 구제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루즈벨트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폐지, 관리통화법을 도입해 경제 체질을 바꿨고, 테네시강유역개발공사를 설립해 대규모 댐을 건설, 일자리를 창출했죠. 대규모 댐을 건설한다는 아이디어는 '후버댐'으로 거론되며 미국 뉴딜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업이 됐습니다.
소외계층을 보호하고 일자리 창출을 중시한다는 점이 문 대통령의 뉴딜 취지와 맞물리죠? 문 대통령은 평소 자신의 롤모델을 루즈벨트 대통령으로 꼽기도 했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데이터·AI 전문기업 더존비즈온 강촌캠퍼스에서 '후버댐'을 차용해 이번 뉴딜의 '시그니처 사업'을 '디지털댐'으로 설명하기도 했죠.
뉴딜을 좋아한 대통령은 문 대통령만이 아니에요. 과거 정부도 경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뉴딜' 카드를 꺼냈어요. 그 알맹이는 다르지만 포장은 모두 뉴딜이 맡았습니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에 대한 민자유치 확대를 핵심으로 한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을 추진했어요. 당시 뉴딜은 대규모 토목사업에 집중했습니다. 연기금과 민간자본 등에서 자금을 조달해 SOC나 도로, 다리, 학교, 아동보육시설, 노인요양시설 등을 건설하고 경기 부양과 실업자 감소 효과를 누리겠다는 건데요. 목표 달성을 위해 약 10조원 가량을 투입했지만, 자금 조달 방식을 놓고 특혜 의혹이 일며 비판에 시달렸죠.
이명박 정부는 '녹색 성장'을 강조했어요. 2009년 녹색기술을 신성장 동력으로 활용해 경제와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삶의 양식을 저탄소형으로 전환하자는 내용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녹색 뉴딜 사업 추진방안'을 추진했습니다. 녹색 교통망 구축∙에너지 절약형 그린 홈 건설 등 36개 사업을 통해 일자리 96만 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대강 살리기'도 이 안에 포함돼 있었죠.
"강을 재탄생시키는 사업"이라던 4대강 살리기는 2012년 환경파괴라는 국민적 반대 여론에 부딪혔어요. 이후 감사원의 조사 결과 한반도 대운하 재추진을 염두한 사업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비난을 샀습니다. 또 이 전 대통령은 의료비, 주거비 등을 줄여 서민층의 중산층 진입을 돕고 중산층을 키우자는 '휴먼 뉴딜'을 추진하기도 했죠.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 정보기술과 소프트웨어 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육성하자는 창조경제, '스마트 뉴딜' 정책이 등장합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운영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가겠다"며 "토목기반의 단기 성장이 아니라, 지식기반의 지속가능한 중장기 성장을 이끌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창조경제는 비전이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많았죠.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심지어 '창조경제'라는 개념조차 모호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역대 정부는 왜 이렇게 뉴딜이라는 단어를 좋아할까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할 때 영어 명칭으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려는 전략일 수 있어요. 브랜드네이밍 전문가 박용석 아이코닉브랜드 대표는 "뉴딜이라는 영어식 표현이 새로운 시그널로 인식될 수 있고, 새로운 기준(New normal)의 연장선에서도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해낸 듯하다"고 말했죠. 같은 명칭이라도 영어를 사용하면 그럴 듯해보인다는, 일종의 '사대주의'적 산물일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문 정부의 뉴딜은 벌써부터 걱정의 목소리가 나와요. 구조적 개혁이 없이 디지털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는 지적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의 공동대표를 지낸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정부의 뉴딜을 놓고 "코로나19 충격으로 경제·사회구조가 변화하면 많은 부분을 바꿔야 하는데, (문 정부의 뉴딜은) 주로 디지털 인프라에 초점을 맞췄다"고 지적했어요.
최 교수는 또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미국에서 새로운 사업이 부상하면 우리도 육성하겠다는 베끼기식 정책이 되풀이돼왔다”며 그 효과에 의구심을 드러냈죠.
정권 교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속 가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이 연결이 돼야 하는데, 매번 명칭만 내세운 새로운 '뉴딜'이 등장하고, 이런 단기적 처방이 예산 낭비로 이어진다"면서 "지속 가능한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뉴딜을 추진하기 전에 예산을 촘촘하게 세워 누수 현상을 방지해야 한다"고 했어요.
정부는 "과거 토목사업 위주로 진행된 뉴딜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21세기형 뉴딜 정책"이라고 밝혔는데요. 노무현 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정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여요. 과연 이번엔 다를까요. 국민의 이목이 문 대통령에 쏠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