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노회찬 동지가 갔을 때 가슴에 큰 구멍이 생겼다. 이제 평생 또 다른 가슴의 블랙홀을 세 개나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10일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찾은 여권 인사들은 앞서 숨진 다른 고인들을 떠올렸다. 사안의 성격은 다르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치적 동지를 잃었다는 생각에 ‘노무현ㆍ노회찬 서거 트라우마’를 곱씹었다. 야권 정치인 사건도 회자됐다. 세상을 떠나는 이런 방식을 조문객들은 ‘자신에게 가혹하고 철저했다’고 정의했다. 하지만 고인을 추모하려는 의도와 달리 일종의 해결책과 선택지로 오인시키거나, 여타 당사자의 2차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날 조 교육감은 조문 후 취재진의 질문에 “광야에 홀로 남은 심경”이라며 “삶을 포기할 정도로 그렇게 자신에게 가혹한 박원순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회찬 전 의원도 언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목숨을 끊었다.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은 2018년 ‘드루킹’ 김동원씨가 주도하는 경제적공진화모임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에는 정두언 전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의원이 우울증을 앓다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이 미치는 여파를 감안하면, 죽음에 이른 고인의 처지에 마음이 아프더라도 추모의 언어가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천영록 두물머리 대표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인이나 리더의 자살이 너무 싫다”며 “문제 중 하나는 자살이 이뤄진 후에 '고인에 대한 명예를 지켜주기' 위하여 일체의 합리적 의문들과 진실 공방이 가로막힌다는 점”이라고 썼다. 이어 “유독 죽음에 대해 모든 걸 덮어주는 문화가 싫다”며 “그 문화가 더 많은 자살을 유도하는 면이 눈꼽만큼도 있으리라”고 경계했다.
박 시장의 업적, 공로, 나름의 고민을 감안하더라도, 강압 수사 논란이 컸던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이나 유서를 통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한 노회찬 전 의원의 사건과 이번 일을 동일선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박 시장은 지난 8일 전직 비서 A씨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고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게 됐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마디 사과도 받지 못한 피해자들, 앞으로 어떤 시달림을 겪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그들을 아프게 떠올린다”며 “명복을 빌지 않겠다"고 적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모두가 고인을 추모할 뿐 피해 여성이 평생 안고 가게 될 고통은 말하지 않는다”며 “고인에 대한 추모의 목소리들과 피해 여성의 고통이 정비례할 것임을 알기에 다른 얘기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겠다”고 했다.
※ 우울감 등 주변에 말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거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어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 소년 모바일 상담 앱 '다 들어줄 개',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