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명문대 출신의 지구물리학 연구원이자 공룡과 제빵, 테니스, 3D 프린팅 등 다양한 분야에 흥미와 재능을 가진 매튜 팔더는 평범한 남성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 줄이야,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어요. 익명 뒤에 숨어 소아 성애에 집착하며 수많은 아동과 청소년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강제로 찍게 했다는 걸 말이에요.
팔더는 세계 최대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 웹사이트)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에 가학적 영상 등을 공유한 혐의 등으로 철창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팔더의 범죄 행각은 2009년부터 8년 가까이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팔더는 최소 50명 이상의 희생자에게 4살 아동을 강간하도록 협박하거나 소아 성애 관련 지침을 공유하는 등 188건의 범죄 혐의를 받았는데, 이중 본인이 인정한 것만 해도 137건에 달합니다.
'666데빌'·'인더가든'. 팔더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에서 사용한 '가면'들입니다. 그는 이 닉네임 뒤에 숨어 비열하고도 잔인하게 피해자를 협박했어요. 여성 예술가인 척, 도움을 주겠다거나 자신을 도와달라며 피해자를 유인해 사진과 개인 정보를 얻어낸 뒤 이를 악용해 협박에 나섰는데요. 협박에 못 이긴 피해자들은 신체 노출부터 범죄를 강요당하거나 변기를 핥는 등의 가학적 고문을 당했습니다. 팔더의 피해자는 전 세계 곳곳 2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완전 범죄는 없다죠. 미 FBI는 2013년 8월 무렵부터 팔더를 포함한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및 이용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팔더가 용의자로 식별된 건 2017년 4월이었고요. 같은 해 6월 팔더의 집을 급습한 경찰은 3일 동안 조사를 통해 팔더로부터 범죄 행각을 인정하는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팔더의 피해자는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팔더를 조사한 경찰관들은 BBC와 인터뷰에서 "그는 희생자를 모욕하는 것을 즐겼다"거나 "그는 희생자를 고문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입을 모았어요. 희생자 중 일부는 팔더로부터 고문을 받으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일도 있었다고 알려졌고요.
팔더의 가학적 소아 성애 범죄의 대가는 32년형이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25년으로 감형했지요. 대신 팔더의 신상은 매우 자세히 공개됐습니다. 그의 출신 대학과 직업, SNS에 공유한 글과 사진까지 말 그대로 '탈탈' 털렸습니다.
팔더는 단순히 천인공노할 국제적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는 최근 우리 사회를 공분케 한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24)가 잡힐 수 있던 실마리였습니다. 국제 공조 수사팀이 팔더의 범죄 행각을 쫓던 중 사이트 운영자인 손정우의 그림자를 포착한 건데요.
팔더가 제작하고 판매한 성 착취물이 손씨가 운영하던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에서 발견된 겁니다. 즉각 웰컴투비디오 조사에 착수한 수사팀은 해당 사이트의 IP 주소가 한국에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우리나라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손씨는 2015년 7월부터 웰컴투비디오 사이트를 운영하며 아동 성 착취물을 이용해 최소 4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일부에서는 해당 사이트의 규모의 자금 흐름을 보면 범죄 수익금은 최대 수십억원 규모로 추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손씨는 2018년 3월 돈을 받고 아동 성 착취물을 3,055개를 제공한 혐의 등으로 붙잡혀 같은 해 9월 1심에서 징역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이듬해 4월 결혼을 했고요. 2심에서는 "혼인으로 부양할 가족이 생겼다"며 선처를 호소했죠. 이렇게 2심은 손씨에게 1년6개월형을 선고하게 된 겁니다.
경찰에 따르면 웰컴투비디오와 연관된 소아성범죄자는 팔더와 손씨 외 32개국 310명에 이릅니다. 이중 한국인은 223명, 무려 72%나 차지하고 있었다고 해요.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씨는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이 난 6일 오후 석방돼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사이트 이용자였던 팔더는 아직 교도소에 있고 출소일까지는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남았지요. 손씨가 죄의 대가를 합당하게 치렀는지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손씨는 원래 지난 4월 27일 석방됐어야 했지만, 미뤄진 건 미국의 범죄인 송환 요청 때문입니다. 손씨가 미국으로 가게 될 경우 아동 성 착취물 소지 혐의만으로도 최소 5년 이상의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손씨 사건은 더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아동 음란물을 입수해 소지했다는 이유로 징역5년형을 선고받은 전례가 있고 2018년 10월에는 돈을 내고 아동 음란물 수천 개를 내려받은 혐의로 징역15년형을 선고받은 남성도 있습니다.
손씨가 저지른 범죄에 비해 1년6개월형은 턱없이 모자란다고 지적하는 이들은 손씨에 대한 미국의 범죄인 송환 요청을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6일 우리 사법부가 이를 불허하면서 공분 여론이 쏟아졌지요.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인 서지현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검사는 손씨에 대한 미국 송환 불허 결정에 "우리나라에서 터무니없는 판결을 받은 자를 미국으로라도 보내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해달라고 국민이 그토록 염원하는 것에 최소한 부끄러움이라도 느꼈어야 했다"고 강하게 비판했고요. 판사 출신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도 "사법 체계의 총체적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는 등 비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분 여론은 여러 방향으로 번졌습니다. 시민단체 등은 사법부를 향해 온·오프라인에서 항의의 뜻을 연일 밝히고 있고요. 이수진 민주당 의원 등은 관련 법 개정에 박차를 가하며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이들이 입모아 말하는 것은 '사법 신뢰의 회복'인데요.
"법원 판결은 이미 낮은 최고형에 비해서도 미미했고 최근 미국의 송환요청마저 불허했다. 게다가 검찰은 당초 그를 범죄수익은닉으로는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모두 각자의 책임을 방기했던 셈이다."
이 의원의 지적처럼 누구 하나의 탓은 아닐 겁니다. 다만 사법부뿐만 아니라 국회까지, 모두 서로의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이제는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