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서울 종로구 공관을 나선 뒤 10일 자정 성북구 삼청각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까지의 동선이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어두운 색의 복장을 입고 배낭을 멘 채 공관에서 나온 박 시장은 곧장 와룡공원으로 향해 도보로 인근 북악산 자락에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10일 경찰과 소방당국, 서울시 등에 따르면 박 시장은 전날 오전 시측에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에 서울시는 오전 10시40분 기자단에게 '박 시장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날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고 공지했다. 당초 박 시장은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와 오찬을 한 뒤 오후 4시40분에는 시장실에서 김사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과 지역균형발전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일정을 정리한 박 시장은 9일 오전 10시44분 종로구 가회동 공관에서 나왔다. 공관 인근 폐쇄회로(CC)TV에 담긴 박 시장의 모습은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모습이었다. 마스크를 낀 채 청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서울시 브랜드인 '아이서울유(IㆍSEOULㆍU)' 로고가 적힌 배낭을 멨다. 재동초 후문 담벼락을 따라 좁은 골목길을 걷는 박 시장의 시선은 내내 거리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경찰은 박 시장이 택시를 이용해 인근 와룡공원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와룡공원은 공관에서 차로 5분 거리다. 박 시장의 모습은 오전 10시53분 와룡공원 배드민턴장 인근 CCTV에 다시 한번 포착됐다. 박 시장의 행적이 CCTV로 확인된 건 이곳이 마지막이다.
박 시장 딸은 오후 5시17분쯤 112에 "아버지가 4, 5시간 전 이상한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휴대폰이 꺼져있다"고 신고했다. 신고 내용을 고려하면, 박 시장은 낮 12시~오후 1시쯤 딸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한 채 산 속으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의 휴대폰 신호는 오후 3시49분 성북구 핀란드대사관저 주변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후 꺼졌다. 와룡공원에서 핀란드대사관저 인근은 도보로 30분 가량이고, 핀란드대사관저에서 박 시장의 시신이 발견된 현장까지의 거리 역시 걸어서 30분 정도다. 경찰 관계자는 "공관에서 와룡공원까지는 택시를 타고 움직였고, 이후 (시신이 발견된) 북악산 인근까지는 도보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박 시장 딸의 신고를 받은 지 13분 가량 뒤인 9일 오후 5시30분부터 와룡공원과 핀란드 대사관저 인근, 국민대 인근 등 북악산 일대를 수색했다. 해가 저물고 오후 9시30분쯤 1차 수색을 마칠 때까지 박 시장을 찾지 못했지만, 1시간 뒤인 오후 10시30분부터 2차 수색을 재개해 10일 오전 0시1분 박 시장의 시신을 찾았다. 성북동 숙정문과 삼청각 사이 북악산 자락에서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가방과 휴대폰, 물통, 명함, 약간의 금전, 필기도구가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소방 인명구조견이 먼저 이들 물건과 박 시장의 시신을 찾았고, 이어 가던 소방대원과 기동대원들이 최종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박 시장의 정확한 사망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이날 오전부터 여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수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타살 혐의점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망 전 휴대폰 통화내역과 CCTV 분석 등으로 동선을 살펴볼 방침이다. 박 시장이 자신의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한 사건은 박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수사가 중단되고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