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이 9일 실종됐다가 7시간 여 만인 10일 0시 1분쯤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전 직원이 성추행으로 경찰에 고소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경찰은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성추행) 관련 고소장이 접수된 것은 맞다”고 밝혔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는 박 시장의 이력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국 최초의 성희롱 재판으로 불리는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1992)에서 무료로 피해자 변론에 나섰던 이가 박 시장이었고, 서울시장이 된 뒤에는 “서울을 성 평등 도시로 만들겠다”며 여성친화적 시정에 주력했던 그다. 또 지난해에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시도했던 만큼, 본인이 같은 의혹에 휘말리는 상황을 가정할 경우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렸을 수 있다.
탈권위적 행보로 포용을 강조한 박 시장에게 이 같은 의혹은 대중에 이중적 행태로 비칠 수 있고, 그가 쌓아온 도덕적 자산도 앗아갈 수 있는 위기였다. 이 후폭풍이 그에게 큰 부담이 돼 종적을 감춘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던 상황에서 이 같은 의혹은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한 여성 공무원은 “(박 시장 관련) 성추행 이야기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점에 비춰 시정을 펼치면서 받았을 업무 스트레스도 배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실제 박 시장은 주택공급 확대 수단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하는 정부 여당과 최근 대립각을 세워왔다. 전날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정부의 부동산 정책 문제를 놓고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자리는 박 시장에게 부담스러운 자리였을 수 있다.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방침이 나온 직후이던 지난 6일, 박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그린벨트 보호는 서울시의 철학”이라며 강하게 맞받아 쳤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박원순표’ 정책을 통해 차별화를 꾀하다 당과 충돌하면서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박 시장은 숨진 채 발견되기 이틀 전인 지난 8일 시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서울판 그린뉴딜'을 야심차게 발표했고, 그에 앞서 지난 6일엔 조직개편을 비롯해 민선 7기 후반기를 채울 청사진을 기자들 앞에서 내놓기도 했다. 격무와 성과에 대한 압박에 시달려 자취를 감췄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낮다는 반응이 나온 이유다. 박 시장 측근들도 “일을 사랑한 리더”로 통한 박 시장이 업무 스트레스로 종적을 감추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