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리나라 주택은 충분한가?
주택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가 투기를 억제하고 서민주거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주택시장 불안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특히 주택투기수요와 공급부족,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지를 놓고 전혀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사실 정부 정책의 방향도 둘 사이를 오가는 측면이 있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실수요 중심으로 주택시장을 재편하는 것에 방점을 뒀다. 공급을 확대해도 다주택자들에게 돌아가면 별 효과가 없으므로 투기수요를 잡아 주택시장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부터는 ‘3기 신도시’를 비롯해 대대적인 공급확대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런 이유에선지 많은 국민들과 시민단체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조차 우리나라 주택공급이 충분한 수준인지를 두고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정답은 뭘까. 하나씩 따져보자.
주택공급을 얘기할 때 거론하는 대표적 통계는 ‘주택보급률’이다. 주택수를 가구수로 나눈 값으로 주택재고가 거주가구수에 비해 많은가 적은가를 판단하기 위한 지표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104.2%다. 전체 가구 수보다 84만여채가 더 많다. 하지만 주택보급률은 실제 주택재고가 충분한지를 보여주는 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주택수요의 대리변수인 가구수가 현실보다 적게 측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택을 필요로 하는 가구수는 ‘일반가구수’를 기준으로 집계하는데 여기에는 외국인가구와 집단가구가 제외된다. 주택보급률에서 사용하는 가구수는 일정기간 주거안정을 누려야 하는 가구를 중심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거주 외국인 약 200만명(약 50만가구)이 보급률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불법체류 외국인과 적법하게 1~2개월 체류하는 외국인 모두 통계에서 빠진다는 얘기다.
주택재고를 대리하는 주택 수 집계도 오류가능성이 높다. 보급률의 주택 수는 한 가구가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 거처(shelter) 단위로 집계한다. 예를 들어 다섯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1동의 다가구주택의 경우 소유자 기준으로는 1채이지만 거처 단위로는 5호가 된다. 그런데 다가구나 원룸의 방을 불법으로 나누어 여러 개의 쪽방을 만들더라도 적정주택(decent home)으로 간주된다. 에어비앤비 등으로 활용되면서 중장기적인 주택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더라도 역시 주택에 포함된다. 보급률의 주택수가 실제 거주 가능한 주택 수보다 과다하게 잡힐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주택재고 수준을 판단하는 지표는 ‘1,000인당 주택수’이다. 이 지표를 기준으로 삼으면 우리나라 전체의 주택재고가 충분한 수준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1,000인당 주택수는 403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8위다. 독일이나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500호 이상이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494호로 우리보다 훨씬 많다.
1~2인가구가 많을수록 가구수를 기반으로 한 주택보급률보다 1,000인당 주택수가 더 중요한 지표로 간주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주택보급률 지표를 고집하고 있는데, 주택은 가구(household)단위로 거주하므로 보급률이 더 쉽게 다가온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1~2인가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1,000인당 주택 수를 기준으로 재고수준을 파악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설사 주택수와 가구수가 균형이 맞다 해도 '주택의 질'까지 함께 따져봐야 한다. 수치 상으론 주택 보급이 충분해 보일 수 있지만 질이 떨어지는 주택이 많으면 더 넓고 쾌적한 곳으로 이사하려는 실수요가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8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물리적으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최저주거기준(Minimum Housing Standard)미달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6%, 120만가구에 달한다. 대부분 거주가구원수에 비해 면적이 너무 적거나 방수가 부족한 경우다. 이런 주택을 적정주택(decent home)으로 보기는 어렵다.
노후주택도 실질적인 주택재고를 감소시키는 요인이다. 전국의 약 1,800만호 중 30년 이상된 주택은 18%, 310만호에 이른다. 서울시 전체 주택수 290만호보다도 많다. 특히 단독주택의 절반인 200만호가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이다. 노후 단독주택은 냉난방시설이나 부엌, 창호 등이 낡아서 거주자들이 양질의 주거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 있다. 면적 등이 적절하더라도 노후가 돼 주택의 기능이 떨어지는 주택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주택재고 중엔 사람이 살고는 있지만 비좁거나 낡아서 충분한 기능을 못해 재고(stock)로서 가치가 낮은 경우가 많다. 주택재고 통계가 과대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주택재고를 산정하는 통계에 함정이 많다면, 이를 메우기 위한 주택공급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주택수요는 크게 신규수요와 대체수요로 구분된다. 신규수요는 인구가 증가하거나 가구가 분화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수요인 반면 대체수요는 멸실이나 주거불안, 이직 등으로 발생하는 수요다. 통상 주택을 공급할 때 신규수요를 중심으로 과부족을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도시의 성숙도가 높을 때는 대체수요가 더 많을 수도 있으므로 둘 다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신규주택수요는 기본적으로 가구분화에 의해 발생한다. 가구들의 소득과 주거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으므로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가구수다.
통계청의 가구 수 추계를 기반으로 가구증감을 계산해보면 수도권에선 향후 5년간 60만호 내외의 신규주택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체수요의 경우 가장 중요한 멸실주택수를 기반으로 추정해보면 향후 5년간 최소 25만호가 멸실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주택 수도 증가하므로 이후에는 멸실 호수가 더 많아질 것이다.
이를 합하면 수도권에서만 향후 5년간 적어도 85만호의 총 주택수요가 예상된다. 연간 17만호 정도로 3기 신도시 전체 공급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주택재고도 충분하지 않은 데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급량도 부족하다는 것이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결론인 셈이다.
그러나 주택공급을 무조건 늘리라고 하기에도 상황이 간단치는 않다. 무엇보다 서울과 수도권의 가용택지가 고갈되고 있다. 특히나 수도권 주택수요의 상당부분이 서울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택지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무조건적으로 공급확대를 외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서울과 수도권의 수요를 다른 곳으로 분산하는 정책이 병행되어야만 지속 가능한 주택시장 안정을 이룰 수 있다. 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고용과 주거, 교육, 여가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다른 도시들을 가꿀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고용창출과 함께 국립도서관, 최상위 의료기관 및 교육기관, 공원 등 서울 수준의 생활인프라를 비수도권 중심도시에 적극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일자리와 잠자리가 함께 개선되어야 서울로 향하고 있는 수요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수도권의 주택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다. 많은 정부가 명운을 걸고 노력했지만 서울을 향한 전국민의 주택수요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투기는 근절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국민들이 자연스러운 주거상향을 통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적절하고 충분한 주택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또한 주택만이 아닌 공공인프라를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비수도권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주택수요의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전략을 병행해야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