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출신 법제처장, "문 대통령, 수십년 숙원 행정기본법 제정 적극 홍보 주문"

입력
2020.07.1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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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고 싶지 않아서요.”

김형연(54) 법제처장은 8일 정부세종청사 법제처 접견실에서 본보와 만나 그간 언론을 멀리한 사정을 이렇게 말했다. 판사ㆍ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인 그는 지난해 5월 법제처장에 취임한 이후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김 처장이 인터뷰를 하기로 한 건 법제처가 주도한 '행정기본법 제정안'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이달 7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내가 1970년대 사법고시 준비할 때도 행정기본법이 필요하단 얘기가 있었는데 이제야 만들어졌다. 수고했다. 적극적으로 홍보해달라”고 김 처장에 당부했다고 한다. 7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는 행정기본법은 국가 법령의 약 92%를 차지하는 행정 법령의 적용ㆍ집행 기준이 되는 기본법이다. 그간 법으로 규정한 기준이 없어서 법령 해석과 적용이 중구난방이었었고, 특히 특정 규제ㆍ제도 개선을 할 때마다 법을 일일이 따로 개정해야 했다. 행정법학계의 수십 년 숙원으로, 문 대통령이 각별히 챙겼다. 

김 처장은 문재인 정부 초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만큼, 정권의 검찰개혁 의중과 기류를 잘 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거세게 압박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배후가 청와대라는 야당 주장에 대해 김 처장은 "정확한 사실 관계는 알지 못하지만, 법무부장관이 청와대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ㆍ조직의 의견을 듣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지를 두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_행정기본법 제정에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고민이 많았겠다. 

“학계와 행정 부처의 의견 불일치, 개별 부처들 간의 상이한 이해관계 등으로 그동안 법률 제정에 이르지 못했다. 관련 판례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법 제정 절차를 철저히 밟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36번의 자문회의와 수 차례의 지역별 공청회, 입법예고를 거쳤다.”

_'행정처분을 인공지능(AI)이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눈에 띈다.

“연말정산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인공지능이 행정처분을 하면 신고와 동시에 계산 결과가 나올 것이다. 소관 부처의 판단과 법령 마련이 필요하겠지만,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도입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_행정기본법이 ‘적극행정’을 명시한 것을 놓고 공직사회가 불이익을 걱정한다. 

“공무원이 적극행정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지, 적극행정을 하지 않는다고 처벌하기 위한 게 아니다. 공무원 면책, 인사상 우대 등 규범적 근거가 강화됐다.”


_법무부와 검찰이 최근 검찰청법 조항을 두고 해석을 달리했다. 추 장관을 윤 총장의 소속 상급자로 봐야 하느냐, 또 추 장관이 ‘수사 배제’를 지휘할 수 있느냐 등에서 입장이 갈린다.

“검찰청법은 법무부 소관이다. 법제처장으로서 답하기 어렵다."

_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법무부ㆍ검찰 갈등의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한다. 

“청와대와 법무부의 조율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렇게 국가적으로 논란이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법무부가 청와대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 인사로부터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견을 구해야 한다고 본다. 장관 캐릭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법무부장관이라면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을 것 같다."

_법제처장으로서 어떤 원칙을 지키려 하나. 

“취임하면서 두 가지를 다짐했다. 법령을 다루는 기관의 장으로서 항상 헌법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겠다는 것, 그리고 행정기관 편의를 위해 국민 권익을 해쳐선 안 되겠다는 것이다.”

세종 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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