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당이 이른바 ‘임대차 3법’을 이달 중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속도를 내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전세시장이 크게 동요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의 경우 이미 1년 넘게 전세가가 상승하는 ‘공급자 우위’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터라 임차인 보호 명분의 입법이 되레 전세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9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정의당 의원들은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흔히 임대차 3법으로 불리는 제도 관련 법안만 10여개 넘게 발의한 상태다.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면 임차인이 계약 갱신을 통해 최소 4년간 거주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고, 계약 갱신 때 임대료 증액이 5%로 제한된다. 임대차 계약을 하면 30일 안에 신고해야 하는 의무도 생긴다.
민주당은 이들 법안이 20대 국회에서도 논의됐던 만큼 7월 임시국회에서 일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역시 큰 이견은 없는 상황이다.
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전세 기간이 현행 2년에서 최소 4년으로 늘어나는 점이다. 집주인의 전횡을 막고 장기적으로 시장 안정화를 꾀할 수 있지만 제도 도입 과정에서 적지 않은 혼란과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제도 도입 전 계약 관계를 유리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나타나면서 전세가격이 올라갈 개연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989년 말 전세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후 이듬해 봄 전셋값 폭등이 일어난 적이 있다. 집주인들이 2년치 인상분을 한꺼번에 세입자에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입법의 ‘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6ㆍ17 대책으로 갭투자(전세를 낀 매매)가 막히고, 재건축 조합원 실거주 의무로 전세 매물이 더욱 줄어드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또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을 크게 늘리려는 정부 정책 방향도 결과적으로 전세 공급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어 단기적인 시장 왜곡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노희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임대차 시장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제도 변화를 꾀하는 게 좋은데 지금은 공급자 우위 상황이라 전세가격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유예기간을 적게 두는 게 방법일 수 있지만 결국 가격은 시장원리에 따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서울의 전세가격은 1년 넘게 상승세다. 이날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주보다 0.10% 상승해 54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수도권 전셋값은 0.17% 올라 지난주보다 0.02%포인트 상승폭이 확대됐다.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래미안아이파크’ 전용 112.95㎡는 올해 4~5월 전세 거래 세 건이 모두 17억원에 계약됐는데, 이달 4일엔 18억원에 계약이 체결됐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는 매물 자체가 거의 없고 집주인들도 임대료를 몇 억 원씩은 더 올려야 하지 않겠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