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고디바(고다이바, Lady Godiva)는 11세기 영국의 실존 인물이지만, 그의 이야기는 민담이라 보는 게 정설이다. 사실이 뭐든 고디바는 중세, 근대 예술가들의 ‘뮤즈’로, 수많은 시와 서사문학, 회화, 조각, 드라마의 모티브가 됐다. 불법 성착취 동영상이 만연한 근년에는, 고디바 이야기의 엑스트라인 ‘피핑 톰(Peeping Tom)’, 즉 고디바의 나체를 훔쳐봤다가 눈이 머는 천벌을 당하는 재단사 톰의 이야기가 변주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톰의 실명이 배덕에 대한 주민들의 집단 응징의 결과라는 설도 있다. 보지 말(않)아야 할 것을 봤다가 눈이 멀거나 돌이 되거나 소금기둥으로 변하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구약, 여러 나라의 민담ㆍ전설에 흔한 교훈담 중 하나다.
레이디 고디바는 11세기 잉글랜드 웨스트미들랜즈의 도시 코벤트리(Coventry)를 다스리던, 백작 영주 레오프릭(Leofric)의 아내였다. 가혹한 세금에 소작농들이 겪는 비참이 가여웠던 고디바가 남편에게 세금을 깎아주자고 청했고, 남편은 ‘다음 장날, 나체로 말을 타고 읍내를 한 바퀴 돌면 청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백작 부인 고디바는 그 ‘거래’를 마을에 전하며, 당일 누구도 바깥을 내다보지 말라고, ‘나의 존엄을 지켜달라’고 알렸다.
고디바는 긴 머리를 풀어 몸의 일부만 가린 채 맨몸으로 7월 장날 읍내를 돌았고, 단 한 사람 ‘톰’을 뺀 주민 모두가 고디바의 당부를 따랐다. 눈이 머는 대가를 치르며 고디바의 덕을 배반한 톰은 ‘피핑 톰’이라 불리며 성도착증의 하나인 관음증(Voeurism)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중세 봉건 영주의 탐욕과 귀족의 오블리주(책임)를 따져 묻는 이야기는 농민ㆍ소작농의 각성과 함께 널리 퍼졌다. 고디바 이야기는 12세기 한 수도사가 처음 기록으로 남겼고, 여러 사람의 가필과 변형을 거치면서 16세기 무렵 '원전'에 없던 피핑 톰이 등장했다. 유럽의 12세기는 르네상스와 함께 농업이 발전하며 부의 편차가 부풀던 시기였고, 16세기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본격화하던 금욕의 시대였다.
고디바가 거리에 나섰던 1057년 오늘(7월 10일)을 유럽인들은 ‘고디바의 날(Lady Godiva’s Day)’로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