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입장문 가안', 최강욱에 그대로 유출됐다

입력
2020.07.09 00:54
崔, 페북에 실제와 다른 '법무부 알림' 게시
법무부 "준비과정서 논의 내용 맞다" 인정
秋, 윤석열 건의 거부 이유는 '이성윤 배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언유착’ 사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립해 온 가운데, 법무부 내부 논의 내용이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등에게 새어나간 사실이 드러났다. 윤 총장이 8일 '건의' 형태로 밝힌 입장에 대해 추 장관이 ‘수용 거부’를 표하며 공개한 실제 문구가 아니라, 중간 단계에서 내부적으로 검토만 됐던 내용이 최 대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버젓이 게시된 것이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압박하는 배경에 최 대표를 비롯한 강성 여권 인사들의 ‘입김’이 있다는 세간의 관측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최 대표는 이날 오후 10시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무부 알림’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추 장관이 윤 총장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지 2시간여가 지나서였다. 해당 글은 “법상 지휘를 받드는 수명자는 따를 의무가 있고, 이를 따르는 것이 지휘권자를 존중하는 것임.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다른 대안을 꺼내는 것은 공직자의 도리가 아님. 검사장을 포함한 현재의 수사팀을 불신임할 이유가 없음”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최 대표는 법무부가 기자들에게 보내는 공지문 형태를 취한 이 글에다 “‘공직자의 도리’ 윤 총장에게 가장 부족한 지점. 어제부터 그렇게 외통수라 했는데도… ㅉㅉ”이라고 자신의 주석을 덧붙였다.

문제는 이 글에 게시된 ‘법무부 알림’이 실제 법무부가 기자단에 전파한 메시지와는 상당히 달랐다는 점이다. 법무부는 윤 총장이 입장을 밝힌 지 1시간 40분 만인 이날 오후 7시50분쯤 “총장의 건의 사항은 사실상 수사팀의 교체, 변경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문언대로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이라 볼 수 없음”이라고만 밝혔다. ‘공직자의 도리’를 운운하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최 대표가 실제 ‘법무부 알림’과는 다르게 그 내용을 마음대로 지어냈다거나, 아니면 법무부가 중간 단계에서 검토했던 문구가 최 대표에게 흘러들어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그리고 30분 후쯤, 최 대표는 해당 게시글을 지운 뒤, “(이전에 올린 글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되어 삭제했다. 법무부는 그런 알림을 표명한 적이 없다”며 “혼선을 빚어 송구하다”고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법무부는 최 대표의 첫 번째 글에 오른 문구가 실제로 내부에서 검토됐던 입장문임을 시인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오늘 법무부 알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내용 일부가, 국회의원의 페이스북에 실린 사실이 있다. 다만 위 내용은 법무부의 최종 입장이 아니며, 위 글이 게재된 경위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윤 총장의 건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려는 추 장관이 법무부 관계자들과 내부적으로 문구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일종의 ‘가안’이었던 셈이다.

주목할 대목은 바로 이 가안에 추 장관이 윤 총장의 건의를 단칼에 거절한 ‘진짜 이유’를 짐작케 하는 문구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앞서 윤 총장은 이날 오후 6시10분쯤 “서울고검 검사장이 현재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포함되는 독립적 수사본부를 구성하며, 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결과만 총장에게 보고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입장을 공개했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를 대체로 수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고, 따라서 법무부도 이를 수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던 터라, 두 시간도 안 돼 ‘수용 거부’를 하게 된 정확한 배경에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해답은 "검사장을 포함한 현재의 수사팀을 불신임할 이유가 없음"라는 부분, 이 중에서도 특히 '검사장을 포함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검장이 독립적 수사본부를 구성한다’는 대검 입장을 추 장관으로선 향후 검언유착 의혹 수사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배제하려는 의도라고 보고, 이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9일 오전 추 장관과 윤 총장이 극적 화해를 하느냐,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느냐는 결국 ‘이성윤 포함이냐, 배제냐'라는 변수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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