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헤이룽장성 둥닝현에 사는 리펑윈 할머니의 낡은 방은 갓난 아이 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할머니의 일과는 아기 인형을 하루 종일 끌어안고 쓰다듬는 일. 마치 살아 있는 제 자식 대하듯 보살핀다. 1922년 평양 근처 숙천군에서 태어났던 할머니는 원래 조선 사람이었다. 이름은 이수단. 일제 식민지 시절 480원에 중국 하얼빈에 ‘위안부’로 팔려갔다. 일본인 이름 ‘히도미’로 불리며 성노예 피해 여성으로 살았던 끔찍했던 3년이 할머니의 인생을 집어 삼켰다. 전쟁에서 패한 일본은 도망가기 바빴고, 할머니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 버려졌다. 몸도 마음도 병이 난 할머니는 한평생 품어 볼 수 없는 아이 대신 인형을 자식 삼아 버티다 2016년 5월 17일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에는 이수단 할머니와 같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 21명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사진작가 안세홍이 지난 25년간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의 변방을 누비며 성노예 피해 여성 140여명을 만나서 인터뷰한 기록을 추려낸 것이다. 시작은 1996년 나눔의 집에서 만난 박두리 할머니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너희가 부끄러운 거지, 우리가 창피한 것이 아니야.” 저자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사그라져가는 이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저자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여성들의 피해 사례를 발굴하는 데 더욱 애를 쓴 건,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한일 역사 갈등 구도로 축소시키려는 일본의 전략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국적, 나이, 동원된 방식 등은 달랐지만, 이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전쟁 후반 전장의 최전선이었던 동남아 지역에선 유독 여자 아이들이 많이 잡혀갔다. 해양 보급로가 차단되면서 콘돔 보급이 끊기자, 임신을 막기 위해 생리를 시작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타깃이 됐다.
“나는 개나 말하고 똑같았어요. 내가 하는 말은 진짜예요.” 동티모르의 성노예 피해 여성 프란시스카 마르케두는 절규했다. 그의 팔뚝엔 일본 군부대 마크 문신이 낙인처럼 찍혀 있다. 동남아 지역 피해 여성들은 나 몰라라 하는 국가의 무책임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다수가 피해 사실을 숨기고 쉬쉬하며 집 안에서만 숨어 사는 처지다.
그럼에도 이들이 침묵을 깨고 세상에 나온 건 자신들이 기록으로 남겨져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길 바래서다. “내 명예는 훼손되지 않았어요. 일본 정부는 적어도 성노예 제도로 희생당한 여러 형태의 고통을 해소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가 짓밟은 여성들의 주장에 대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명예를 지킬 수 있습니다.” 평생 빛도 안 드는 집 안에서 웅크리고 살던 마리아 아로요는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또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누군가의 기억과 눈물이 아니라 이제 우리 모두의 역사와 인권으로 남기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저자는 피해 국가에서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일본어판과 영어판 출간도 준비 중이다. 책은 제목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일본군 입장에서 쓴 위안부란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