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예술고의 학교 전설 ‘5개월의 기적’, ‘90일의 신화’

입력
2020.07.08 21:13
이신화 김천예술고 명예교장




"모든 선생님들이 반대했죠."

2008년, 김천예술고등학교(김천예고)에 이전에 다니는 학교에서 권고 퇴학을 당한 '중고' 신입생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교사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외모부터 위압적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논란의 학생을 추천한 교사는 "겉모습은 그렇게 보여도 순수한 학생"이라고 맞섰다. 당시 교장을 맡고 있던 김천예고 설립자인 이신화 명예교장이 나섰다. "이런 학생을 받아서 잘 가르치는 것이 미션 스쿨인 우리 학교의 할 일"이라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교장인 내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저도 만나서 이야기해보니까 외모와 달리 너무 순수하더라고요. 되겠다 싶었습니다."

반전은 다섯달 만에 일어났다. 전학생이 ‘세종음악콩쿠르’에 나가겠다고 했다. '세종음악콩쿠르'는 한해 열리는 콩쿠르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큰 대회였고, 김천예고에서 가장 잘한다는 학생도 '입상'을 목표로 할 정도였다. 이 명예교장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참가에 의의를 둔 것이었다. 도전만으로도 기특해서 특별히 거마비까지 챙겨줬다.  

대회에서 김천예고의 유망주는 기대를 훨씬 웃도는 선전을 했다. 전국에서 난다긴다하는 예비성악도가 모인 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것이었다. 

"'지방 예고의 쾌거'라는 제목으로 지방지에 실릴 만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친구의 성과는 묻혀버렸습니다. 더 큰 일이 벌어졌거든요."

전학생이 1등을 한 것이었다. 본격적인 성악 수업은 5개월이 전부인 학생이 쟁쟁한 고교 실력자들을 모두 꺾은 것이었다. 이 대회를 계기로 전학생은 ‘문제학생’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찾았다. 이제는 '트바로티(트로트+파바로티)'라는 별칭으로 통하는 김호중씨다. 이 명예교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달콤한 사과에 벌레가 꼬이듯 너무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기에 궂은 일들을 겪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호중이는 가사를 잘 외웁니다. 한번만 보면 다 외우는 느낌이 들어요. 좋은 선생님(서수용)을 만난 것도 주효했겠지만, 기본적으로 뛰어난 자질이 있었습니다."

이후 '세종음악콩쿠르'에 이어 '수리음악콩쿠르'에 나가서도 1등을 차지했고, '대한민국인재상'도 수상했다.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방송에도 출연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올해 김호중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대중에게 각인시킨 사건이 있었다. '미스트 트롯' 도전이었다. 이 명예교장은 처음 트로트를 부르겠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고 밝혔다. 

"성악과 트롯은 다른데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본인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학교에 다닐 때부터 종종 트롯을 불렀다고 하더군요. 걱정은 됐지만, 어느 정도는 해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가 '미스터 트롯'에 도전하면서 트로트라는 분야를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제자를 통해 접한 트로트는 삶의 고비를 절절하게 담고 있어 성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어린 나이지만 곡진한 이야기가 많은 만큼 절절한 가사가 매력인 트롯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이 트롯을 통해 위로받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10년 전 ‘문제아 제자’가 이제는 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하하!"

이 명예교장은 "성악도가 학교에서 스트레스가 쌓을 때마다 거리낌 없이 트롯을 불렀다는 것에도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예술가는 '자유'라는 공기로 숨 쉬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최소한의 틀 안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유롭게 자신의 끼와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학생을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 틀을 맞추는 것이 교육철학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제자가 한 명 더 있다. 김호중씨와 2살 많은 학생이었다. 캔버스가 아닌 벽에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었다. 김천 시내에 있는 작은 터널에 사다리 가져와서 벽에다가 그림을 그렸다. '벽에 낙서했다'는 이유로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벽만 보면 흥분하던 이 학생은 2016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90일 만에 뉴욕을 발칵 뒤집어놓고 왔다. 한국에서 온 낯선 이방인의 그림이 지역 신문에 소개되었다. 이후 그는 2018년 미국 정부로부터 '유재석 비자'라고도 불리는 예술인 비자를 받았으며, 2019년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활동하고 있다. 팝가수 리아나, 가수 박재범이 팔로워하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로 성장한 심찬양(32)씨다.




그에게도 멘토 역할을 해준 선생이 있다. 김천예고에서 미술을 가르쳤던 김한재 선생님이다. 그의 그림을 '낙서'가 아닌 '예술'로 인정해주고, 작품활동의 방향에도 조언해주었다. 이 명예교장은 "김천예고에 또 하나의 전설이 탄생했던 것 역시 지도 교사의 헌신과 믿음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30여 년 역사의 예술고에 이렇게 걸출한 스타를 배출한 학교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믿는 학교, 틀에 학생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 틀을 맞추겠다는 신념이 이런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정신이 유지된다면 앞으로 더더욱 위대한 예술가들을 탄생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명예교장은 "교사들에게 어린 예술가들을 자유롭게 성장시켰다면, 원로들은 교사들이 자유롭게 학생들과 호흡하고 김호중이나 심찬양 같은 원목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제2의 김호중, 심찬양과 같은 학생이 나올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다해주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큰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김채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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