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북핵 협상 수석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7일 방한했다. 2박3일간 머물면서 북한과 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거듭된 대화 거부로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비건 부장관은 대북정책 조율을 포함한 한미 현안 논의를 통해 한반도 상황 관리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건 장관은 그간 대북 협상에서 유연성을 보일 수 있음을 피력하면서도 실무협상을 통해 비핵화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최근에도 11월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미국은 꽤 탄탄하고 세부적인 계획을 내놓았으며 북한이 협상에 임한다면 매우 빨리 진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무협상을 재개해 비핵화 로드맵을 그려낼 지는 북한에 달렸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얼마 전 "공은 북한 코트에 있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이 같은 미국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정황은 없다. 국무부는 6일(현지시간) 비건 부장관의 7~10일 한일 방문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다양한 양자ㆍ국제 이슈에 대한 동맹 간 협력과 함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에 대한 조율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협상 목표인 FFVD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비건 장관은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달리 북미 협상에 유연한 입장을 보여왔지만 북한이 원하는 수준은 아니어서 난항이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한 일행에 앨리슨 후커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등 백악관 인사들이 빠진 것도 미국이 북미 접촉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해석을 낳는다. 후커 보좌관은 그간 북미 협상에 빠짐없이 관여해온 인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백악관 인사들의 해외 방문이 제한된 탓일 수 있지만, 불확실한 북미 접촉에 대한 기대감을 접었기 때문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비건 부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를 갖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일각에선 대북제재 일부 완화 카드도 거론된다. 이 경우 북미 간 전격 회동도 점쳐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비건 부장관 방한 당일에도 북미 접촉 가능성에 거듭 찬물을 끼얹었다. 현재로선 정상 간 담판으로 대폭적인 제재 완화를 얻어내겠다는 북한과 실무협상 재개를 촉구하는 미국 사이의 간극이 넓어 보인다.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약 7개월만이다. 북한의 '성탄절 선물' 발언으로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해 12월 대북특별대표 겸 부장관 지명자 신분으로 방한했을 당시엔 북미 회동을 전격 제의했다가 빈손으로 돌아갔다. 부장관 승진 후 첫 방한인 만큼 그가 업무 영역에 맞게 대북 대응 조율 및 방위비분담금 협상 등 한미 간 현안에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