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사위 회사에까지... 美 코로나 지원금 엉뚱한 데로 샜다

입력
2020.07.07 19:30
대형 로펌ㆍ사립학교 등 수혜
중기 일자리 보호 취지 무색


미국 행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을 돕기 위해 도입한 ‘급여보호프로그램(PPP)’ 지원금이 대형 로펌과 명품업체 등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간 사실이 밝혀졌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정치 지도자들의 가족회사까지 혜택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이해충돌’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미 중소기업청(SBA)이 6일(현지시간) 공개한 PPP 지원 내용을 보면, 은행들은 이 제도를 통해 490만건의 대출을 시행했다. 건당 평균 대출 규모는 10만7,000달러(약 1억2,800만원)였고, 500만~1,000만달러의 고액 대출을 받은 업체도 5,000곳에 달했다. PPP는 6,600억달러를 들여 직원 500명 이하 중소기업이 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무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한 달 인건비의 2.5배를 1,000만달러 한도로 빌려주는데, 대상 기업이 8주간 대출금의 75%를 고용한 직원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면 상환 의무를 면제해주는 사실상 보조금에 가깝다. 앞서 3월 미 의회가 통과시킨 2조2,000억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 패키지의 핵심이다.

중소기업 살리기가 목적이지만 지금까지 지원금을 받은 대상 중에는 로펌 100곳 등 중소기업으로 보기 어려운 업체들도 다수라는 게 미 언론의 분석이다. 실제로 유명 로펌 보이스 실러 플렉스너는 500만~1,000만달러의 지원금을 타냈다. 오랫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로 일한 마크 카소위츠의 로펌 카소위츠 벤슨 토러스도 지원 명단에 포함됐다. 명품 패션업체 캐롤라이나 에레라와 베라 왕 역시 각각 200만~500만달러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빌 클린턴ㆍ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딸들이 다녔던 명문 사립학교들에도 PPP 자금이 투입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일가도 PPP 수혜 목록에 들어 있었다. 트럼프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가문이 소유한 법인 에스플라네이드 리빙스턴에 최소 35만달러의 대출금이 흘러 들어갔으며, 부동산 회사 프린스턴 포레스탈에는 100만달러 이상이 투입됐다. 정부 각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CNBC방송은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부인 일레인 차오 교통장관이 소유한 사업체가 최소 35만달러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소니 퍼듀 농무장관이 창립한 트럭 회사에는 최소 15만달러가 지급됐다.

트럼프와 앙숙 사이인 펠로시 하원의장도 남편이 지분 8.1%를 소유한 호텔 투자 업체 EDI어소시에이트가 35만~100만달러의 지원금을 타낸 것으로 나타났다. 펠로시 측 대변인은 “펠로시 의장 남편은 PPP 대출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대출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며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절차의 적법성 여부를 떠나 부자 업체들의 지원금 수령은 PPP 도입 취지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PPP 시행 초기인 올해 4월 대형 식당체인 셰이크섁과 미 프로농구(NBA) 구단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지원금을 신청했으나 여론의 거센 반발에 대출을 반납한 바 있다. 앞서 하버드대는 경기부양 패키지법에 의한 고등교육기관 지원금을 포기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지원금 반환을 압박한 데에 따른 것이다.

미 정부감시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크레이그 홀먼은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대출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 입안자들이 PPP 납세자 지원에서 이익을 얻어서는 안된다”며 이해충돌 가능성을 우려했다.  

PPP가 정작 고용 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WP는 지원금을 받은 기업 중 9만곳이 일자리 유지 개수를 0으로 기입하거나 아예 공란으로 남겨놨다고 전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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