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서 1000만원 썩는 기분" 동학개미, 주식에 뭉칫돈 올인

입력
2020.07.0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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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학개미, 대박 열망에 뛰어들다

"통장에서 1,000만원이 썩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직장인 김보라(34)씨는 2년 가까이 매달 50만원씩 넣던 적금을 최근 해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말 이 돈을 모두 주식계좌로 옮겨 코스피 두 종목과 코스닥 한 종목을 샀다. 현재까지  수익률은 5% 남짓. 4개월 남았던 적금 만기를  채울 경우 김씨가 받게 될 이자(연이율 1.1% 적용 시 약 14만원)를 뛰어 넘는 수익이다. 김씨는 "돈을 그만 모으고(적금) 이제는  좀 벌고(주식) 싶다"고 말했다. 

올해 김씨처럼 주식을 시작한, 넓게는 '동학개미'로도 불리는 개인투자자가 정말 많아졌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개인의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약 3,212만개에 이른다. 올해 들어서만  276만개나 늘었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5월 기준 2,821만명)까지 훌쩍 뛰어넘는 숫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증시가 곤두박질 칠 때도 동학개미들은 주식시장으로 돌진했다. 주가는 결국 오른다는 믿음을 실탄 삼아, '대박 실현'이란 단순하지만 명확한 목표 의식으로 무장한 채였다. 

제로금리 뭉칫돈 32조, 주식광풍 견인

코로나 쇼크로 증시가 요동치는 사이 동학개미들은 그야말로 '역대급' 주식 투자 광풍을 일으켰다. 올해 3월 개인투자자의 코스피 시장 순매수(매수-매도) 금액은 11조1,869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상반기 동학개미가 사들인 주식만 32조원어치다.

이달에도 개인들은 5,000억원 이상을 순매수 중이다. 지난 4월 종잣돈 2,000만원으로 주식을 시작한 직장인 한모(28)씨는 "올해 들어 회사 동료들과 주식 얘기를 하지 않은 날이 손에 꼽힌다"고 했다. 


개미들을 주식에 빠지게 한 건, 초저금리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인 초저금리(현재 기준금리 0.5%) 장기화에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와 주식시장으로 몰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 5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 ㆍ우리ㆍ하나ㆍNH농협)의 정기 예ㆍ적금 잔액(6월말 672조원)은 올 들어  14조원 가까이 줄었다.

반면 증시 대기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예탁금은 올해 1월 초 30조원에서 지난달 말 사상 첫 50조원을 돌파했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집 살 돈은 없고 예적금은 손해보는 느낌에서, 서민이 자산을 늘릴 방법은 주식 뿐이란 심리가 작동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2030개미들 "집은 못 사도 돈은 벌 수 있잖아"

큰 금액의 재테크와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진 2030 청년 세대가 주식에 빠지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20~30대의 주식계좌 수는 1년 전보다 50% 이상 늘었다.   

한국 사회에서 재산 증식의 제1 수단은 여전히 부동산이다. 하지만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데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당분간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지 못할 것이란 판단에 주식시장 문을 두드리는 젊은 층이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공모주 청약에서 무려 31조원을 끌어들여 대박을 터뜨린  SK바이오팜에도 청년 개미 유입이 두드러졌다.  청약에 참여한 계좌의 절반 이상은 30, 40대 투자자들이었다. 직장인 조윤임(33)씨는 "모아둔 돈으로는 엄두조차 못 내는 부동산에 기웃대느니 꾸준히 종잣돈을 늘려 주식으로 재미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 언론도 동학개미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세계적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소셜 미디어 발달로 개인투자자가 늘어난 가운데 한국이 그 중심지가 됐다"고 보도했다. WSJ는 "한국의 1인당 주식 계좌 수(0.61개)는 미국(0.31개)의 2배에 달한다"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20, 30대 개인이 직접 투자에 나섰다"고 소개했다. 

불개미, 빚개미... '위험주의보'

동학개미의  주식 열풍에 힘입어 코스피는 이제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일부의  '무모하고 무리한 투자'에 대한 경고도 만만치 않다.   

 코스피가 1,400선까지 추락했던 지난 3월만 해도 개미들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소위 우량주 위주의 안전한 쇼핑을 즐겼다. 하지만 이들 종목들의 주가 상승률이 4월 들어 주춤하자 개미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하루에도 수십 %씩 오르내리던 원유 상품이나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인버스가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실제 지난 4월 개인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 1, 2위에 '코덱스 WTI 원유선물', '코덱스 200선물 인버스 2X' 가 이름을 올렸다. '한 방'을 노린 '도박 개미'들의 등장에 코로나19 이후 사실상 문을 닫은 카지노와 스포츠 도박에 몰릴 돈이 주식시장의 고위험 상품으로 쏠렸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빚을 낸 투자(빚투)'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지난 6일 기준 개인이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을 산 금액(신용거래융자금)은 12조6,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초(9조원대)에 비해 3조원 이상 늘었다. 주가가 추세적으로 상승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이 투자행위에 대한 경고 목소리는 크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융자를 통한 주식 매수는 주가 하락 시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어 현금 거래에 비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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