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프랑스에서 발견한 빨리빨리 문화 '비스트로'

입력
2020.07.06 22:20




코로나19로 ‘방구석 여행’이 유행이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들춰보거나 가고 싶은 여행지에 자신의 이미지를 넣어 마치 다녀온 것처럼 사진을 꾸며서 SNS에 올리는 식이다. 

‘방구석 여행’으로 (언제가 될지 모를)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책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와 이미지를 모아 가상 여행 일지를 작성해보는 것이다. 품격 높은 가성 여행 일지를 쓰고 싶은 이들이라면 ‘샴페인에서 바게트, 빅토르 위고에서 샤르트르’를 참고할 만하다.

책이 전면에 내세우는 테마는 ‘말’이다. 작가의 주장처럼 말 속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그득하고, 그 이야기는 문화와 역사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우리가 자주 접하는 프랑스어의 어원 풀이 위에 역사와 문화 해설을 곁들인다. 

우선 ‘미슐랭’이라는 단어부터 파고들어 보자. ‘미슐랭’이라는 단어는 여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다 들어 있다. 바로 ‘바퀴’와 ‘음식’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1900년 앙드레 미슐랭이 처음 만들었는데, 그의 친형은 세계 최초로 분리 조립되는 타이어를 발명해 ‘미쉐린 타이어’를 설립한 에두아르 미슐랭이다. 

내무부 산하 지도국에 근무하던 앙드레 미슐랭은 프랑스를 여행하는 운전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자는 취지로 무료 배포되는 여행 및 식당 정보 안내서를 펴냈는데, 이것이 ‘미슐랭 가이드’의 효시다. 매년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발전해온 ‘미슐랭 가이드’는 1926년부터 미식을 상징하는 별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형은 바퀴를 만들고 동생은 그 바퀴를 타고 가볼 만한 곳을 소개했다. 전혀 다른 듯하지만, 통하는 데가 있는 형제란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도 ‘빨리빨리’ 문화가 있다. 파리를 걷다 보면 ‘비스트로’라는 명칭의 음식점 또는 카페를 많이 볼 수 있다. '비스트로'의 어원이 재미있다. 러시아 말로 ‘빨리빨리’라는 뜻이다. 

1814년 동맹군이 나폴레옹을 몰락시키고 파리에 입성했다. 이들 중 성격이 급한 러시아 군인들이 카페에 몰려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비스트로, 비스트로!”를 외쳤다. 오늘날 ‘비스트로’는 가볍고 저렴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으로 통한다.

다음은 조금 살벌한 이야기다. 단두대 혹은 ‘기요틴’에 얽힌 역사다. 기요틴은 조제프 이냐스 기요탱이라는 의사가 고안한 인도적 처형법이라고 한다. ‘기요틴’은 죄인을 고통 없이 순간적으로 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 이전의 사형법으로 마차로 사지를 찢기, 화형, 교수형 등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요틴’은 죽음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사형을 민주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혁명의 결과가 자유와 평등, 박애이기도 하지만 혁명 정신의 수호자이자 ‘타락할 수 없는 인간’인 동시에 가장 유명한 학살자 중의 한 명으로 역사에 남은 로베스피에르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단두대는 혁명의 아이러니를 설명하기에도 적합한 발명품이다.

프랑스인의 인생관이 담긴 ‘세라비’(C'est la vie)라는 단어도 흥미롭다. ‘세(C'est)’는 ‘이것은~’이다, ‘라(La)’ 정관사, ‘비(Vie)’는 인생, ‘이게 인생이다’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는 말로 바꾸면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한다. ‘세라비’를 구체적으로 적용하면 이렇다.

“힘들고 괴롭다고? 세라비! 뭐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코로나19로 방구석 여행 외에는 이 적적함과 무료함을 이겨낼 방법이 없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이 모양인데. 세라비!

김지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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