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범죄인을 청구국에 인도하지 아니한다."
전국민의 시선이 쏠렸던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손정우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 강영수)가 범죄인 인도를 불허하면서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죠. 손씨는 세계적인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해 온 인물입니다.
재판부는 "사이트 회원을 철저하게 발본색원해야 하고, 운영자인 피고인 신변을 한국에서 확보해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대한민국에서 형사처벌 권한을행사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범죄인에 대해 면죄부 주는 건 결코 아니다. 범죄인은 앞으로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런데도 비판이 쏟아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네, 맞아요. 대법원에 따르면 법원이 범죄인 인도 심사 청구 결정문을 전산화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 동안 재항고 사건을 포함해 모두 55건의 인도 심사가 있었어요. 이 가운데 법원이 인도를 거절한 경우는 5건에 불과했다고 해요. 그 중 3건은 공소시효 만료에 의한 거절이었죠. 2006년 7월 인도 거절 결정이 내려진 사건은 미국 국적의 베트남인 우엔 후 창씨가 베트남 정부로부터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인도 요구를 받았던 일인데요. 정치적 성격을 띤다는 이유에서 거절됐습니다.
손씨 사건을 비롯해 올해 있었던 2건까지 따져보면 총 심사 건수는 57건인데, 손씨는 여섯번째 불허 사례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사실 공소시효 만료 사건은 같은 사건에 대한 공범들이어서 사건으로만 따지면 손씨가 네 번째 사례인 셈이에요.
최근 10년(2010~2019년)으로 기간을 좁혀보면 접수된 30건 가운데 29건(96.7%)에서 인도 허가 결정이 내려졌어요. 거절은 2013년 단 1건에 불과했고요. 그나마 불허된 1건도 정치범 사건이었어요. 2013년 1월 법원은 일본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불을 지른 중국인 류창(劉强)씨에 대해 일본으로의 인도를 거절했는데요. 국제법상 '정치범 불인도' 원칙을 따른 결정이었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올해 그런 사례가 있었어요. 10년 전 미국에서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내고 재판을 받다 도주한 30대 남성을 미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한 건데요. 이 결정을 내린 건 공교롭게도 이번에 손씨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였습니다.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 강영수)가 지난달 29일 이모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허가 결정을 내린건데요. 올해 범죄인 인도가 결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이씨는 2010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어요. 현지에서 체포된 이씨는 이듬해 4월 판결 선고를 나흘 앞두고 한국으로 돌연 입국했고, 미국은 2017년 이씨를 미국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이씨 측은 "중한 사건이 아닌데다 공소시효도 만료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범죄 사실이 소명됐고, 미국에서 이미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던 점 등을 들어 인도를 결정했습니다.
외국에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온다고 해서 모든 사건에 대해 인도 심사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심사가 열린 것을 기준으로 보면 공소시효 만료와 정치범 사건을 제외한 사유로 범죄인 인도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손씨가 유일해요. 그만큼 법원이 인도 결정에 관대했었다는 의미겠죠. 범죄인 인도가 청구된 이후 손씨의 미국 인도를 예상하는 시각이 많았던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였어요. 아마 이번 결정으로 그간의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에 아쉬움을 느끼는 국민이 많을텐데요. 손씨가 다시금 법정에 서서 합당한 처벌을 받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