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너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셨는데도, 택시기사가 제대로 죗값을 받지 못할 것 같았어요. 청와대 국민청원에 사연을 올린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함에서 나온 겁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김민호(46)씨는 사고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꿈결같다”는 말을 되뇌었다. 부모님 집에 들어서면 아직도 어머니가 아들을 반갑게 맞아 줄 것만 같다. 접촉사고가 났다며 응급환자가 탄 구급차를 택시기사가 막아서는 바람에 김씨의 어머니 A(79)씨 병원 후송이 지연돼 사망한 사건과 관련, 택시기사를 엄벌해 달라는 국민청원은 사흘 만에 56만여 명의 동의를 받으며 공분을 샀다.
김씨는 5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지난달 8일 갑자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원인은 전적으로 구급차를 막아선 택시기사에게 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폐암 4기로 3년간 투병하던 A씨는 최근 상태가 호전되어 농사일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가 가끔 기력이 쇠하면 병원에 가 며칠 동안 영양제를 맞곤 했다”면서 “당시도 하루 동안 어머니의 상태를 지켜본 뒤 병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사설 구급차를 부른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니, 아내, 아버지를 함께 구급차에 태워 보낸 뒤 입원물품을 챙겨 따라가려던 김씨는 아내에게 날벼락 같은 전화를 받았다. "사고가 났는데 택시가 길을 안 비켜준다”는 전화를 받고 김씨는 “구급차를 막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반신반의하며 사고 장소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한 김씨는 기가 막혔다. 30도가 넘는 더위와 차량들이 내뿜는 열기 속에서 김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창문이 열린 상태로 멈춰 선 구급차였다. 김씨는 “택시기사가 누워있는 어머니를 촬영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햇볕이 가지 않게 하려고 두 손 모아 어머니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며 “택시기사가 산소호흡기와 심전도를 달고 있지 않는 어머니를 보고 ‘이게 무슨 응급환자냐’는 말까지 내뱉었다”면서 몸서리쳤다
10여 분간 실랑이를 한 끝에 겨우겨우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음압병상이 꽉 차 어머니는 곧바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병상이 생겨 응급실에 들어선 순간에도 원인이 불분명한 하혈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진 A씨는 오후 8시 30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머니의 황망한 죽음 뒤 일주일이 지나 김씨는 경찰서를 찾았다. 김씨는 “지난달 16일 경찰서에 가보니 택시기사가 응급차 운전기사를 폭행죄로 고소한 상태였다”면서 “담당 경찰에게 택시기사를 처벌할 수 있냐고 물으니 현행법상 적용할 법이 업무방해죄 정도라는 말을 듣고 진정서를 접수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가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린 것도 △택시기사를 엄벌에 처할 방안이 없고 △택시기사에 대한 수사가 지체돼 마지막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김씨는 “국민청원을 올리기 전날 담당 경찰관에게 전화하니 아직도 택시기사가 조사받은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다”면서 “나같이 억울한 사람들이 없게끔 택시기사를 일벌백계에 처하는 법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