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벌써 2046

입력
2020.07.05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홍콩 영화 ‘첩혈가두’(1990)는 세 청년이 주인공이다. 영화 속 홍콩은 폭력과 절망이 가득한 곳. 거리는 시위대로 가득 차 있고, 폭탄이 터지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을 찾아 베트남으로 향한다. 희망에 부풀어 찾은 베트남은 홍콩보다 더 지옥도에 가깝다. 때는 1967년. 우위썬(오우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당대 최고 스타 중 하나였던 량차오웨이(양조위)가 주연한 영화는 역사를 모르면 이해도, 몰입도 힘들다.

□1967년 홍콩은 격동의 시기였다. 친공산주의 노조의 노동분규가 불씨가 되어 거센 시위 불길이 홍콩을 휩쓸었다. 영국 식민 통치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가 시위의 원동력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배후에서 시위를 부추겼다. 시위대에게 중국 공산당은 우군, 영국은 적군이었다. 폭력 시위로 51명이 숨졌다. 이 중 22명 이상이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시위대의 폭탄 공격에 의한 사망자만도 15명이었다. 대규모 시위에 영국 정부는 화들짝 놀랬다. 여러 개혁 조치를 단행했고, 이는 홍콩이 아시아 4대 용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2014년 홍콩에서 우산혁명이 일어났다. 홍콩 행정장관을 완전한 직선으로 뽑자는 요구가 시위의 표면적 이유였지만, 1997년 중국으로 귀환한 이후 쌓인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만이 홍콩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낸 요인이었다. 우산혁명은 지난해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고, 중국 공산당은 홍콩국가보안법이라는 강경한 통제 수단을 꺼내 들었다. 영국은 홍콩의 자치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며 홍콩인 300만명 가량에게 시민권을 부여할 것이라고 나섰다. 영국이 홍콩의 우군이 됐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홍콩 영화 ‘2046’(2004)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그린다. 정치나 역사와 무관해 보이는 이 영화는 미래에 대한 홍콩인의 불안과 슬픔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2046년은 중국과 홍콩이 일국양제를 마치고 홍콩의 자치권이 완전히 사라지는 해다. 1일부터 실시된 홍콩보안법으로 예정됐던 홍콩의 미래가 더욱 앞당겨지게 됐다. 홍콩에는 2046년이 이미 도래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첩혈가두’의 주인공들처럼 해외에서 살길을 찾을 홍콩 젊은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역사는 기이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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