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때리는 건 아니잖아요.”
고(故) 최숙현 선수 폭행 의혹을 받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의 김 모 감독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선수들은 훈련 도중 수도 없이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성적지상주의자인 김 감독이 훈련의 완성도나 기록 상승을 위한다는 이유에서 폭력과 폭언을 정당화했고, 그 과정에 선수들의 인권은 없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김 모 감독의 또 다른 제자인 B씨는 5일 한국일보에 “트라이애슬론 특성상 하루에 3~4개의 훈련을 해야 하는데, (김 감독)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항상 욕을 먹었고, 심할 때는 맞았다”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매일 두려움을 느꼈고, 압박감이 컸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김 감독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B씨는 감독의 강압에 못 이겨 결국 운동을 그만뒀다.
피해자들은 김 감독이 선수들의 기량이 성에 차지 않으면 거리낌 없이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선수 기량을 끌어올리는 게 감독의 직무지만, 그렇다고 폭력까지 견뎌내기엔 너무 가혹했다는 것. B씨는 “도로 위에서 사이클 훈련을 하다가 누구 하나가 실수하면 그 자리에 세워서 뺨을 때렸다”며 “감독은 ‘사이클 훈련이 위험해 혼 내는 거다’라고 하지만, 폭력엔 수위조절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C씨 역시 “새벽운동을 하던 중 본인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를 발로 찼다”며 “그때 잘못 맞아 손가락이 부러졌고, 지금도 손가락이 휘어있다”고 했다. D씨는 "감독은 원하는 기록이 나오지 않으면 선수를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했다. 병원에선 골절 의심이 된다 했고 피해 선수는 숨쉬기도 어려워했다"며 "이제 와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히다"고 혀를 찼다.
이들은 성적이 좋은 A선수는 김 감독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A선수는 최 선수가 자신에게 가혹행위를 한 선배로 지목한 인물이며,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이 생활하는 숙소 역시 A선수 소유의 빌라로 알려졌다. C씨는 “A선수의 성적이 좋고 기량이 뛰어난 건 사실”이라며 “선수가 잘하면 감독의 위세가 달라지기 때문에, A선수만큼은 다르게 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A선수는 김 감독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A선수가 김 감독을 등에 업고 전횡을 휘두르면서 선수들의 고충도 컸다. D씨는 “A선수는 자신과 뜻이 다른 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의 행동에서 꼬투리를 잡고 이를 부풀려 감독 귀에 닿게 만든다”며 “A선수 말에만 기댄 감독은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억압적인 태도로 당사자를 대해 해명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B씨도 “A선수가 (훈련이나 숙소 생활 등)본인 기분에 따라 행동하면 다른 선수들은 할 수없이 거기에 맞춰야 했다”고 했다.
김 감독은 팀 내부의 문제가 밖으로 알려지는 걸 적극적으로 막았다. 외부 훈련 중에 선수의 뺨을 때리며 체벌을 한 다음날에는 ‘혹시 체벌 장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지 않았냐’며 주변을 살피곤 했다. B씨는 “김 감독과 A선수는 전국체전 등 시합장에 들어설 때 ‘웃자’ ‘분위기 좋게 보여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래서 억지로 웃기도 했다”고 말했다.
체육계 관계자들은 성적 지상주의에서 비롯된 이번 비극이 비단 이 팀에서만의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미투 이후 변화를 예고했음에도 성적 중심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독은 전국체전에서 성적을 내야 자리도 지키고 연봉도 오른다. 비정규직인 감독들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자리를 내줘야 하기 때문에, 편법을 쓰고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