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 재선 확실... 코로나로 이변 없이 끝난 도쿄지사 선거

입력
2020.07.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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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출구조사에서 60% 득표율로 당선 전망
기자회견서 코로나19 의식 만세 삼창도 안해 
집권여당 지원과 야권후보 난립에 어부지리
'첫 여성 총리' 노리며 중앙정치 재도전 관측도


5일 치러진 일본 수도인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나선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현 지사의 당선이 확실하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NHK는 이날 오후 8시 투표 종료 직후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를 근거로  고이케 지사가 60%에 근접하는 득표율로  입헌민주당ㆍ공산당ㆍ사민당 지원을 받은 무소속 우쓰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兒) 후보와 일본유신회의 지원한 오노 다이스케(小野泰輔) 구마모토현 전 부지사, 레이와신센구미 소속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郞)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고이케 지사는 출구조사 후 기자회견에서 "도민의 강력한 지원에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동시에 앞으로 두 번째 임기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축하 꽃다발을 받으며 미소를 보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의식해 만세 삼창은 자제했다. 최근 나흘째 100명 이상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2차 유행 억제와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 개최 등이 향후 과제로 꼽힌다. 

코로나19 여파 속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초반부터 고이케 지사의 낙승이 예상됐다. 그는 3월말부터 매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도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요청하고 정부에 긴급사태선언 발령을 주문했다. 이는 소극적인 정부 대응과 대비되며 긍정 평가를 받았다. 

22명이 출마해 역대 가장 많은 후보가 출마한 것도 재선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줬다. 고이케 지사는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지원을 받아 사실상 여권 후보로 자리매김한 반면, 야권은 단일후보를 내세우지 못하고 난립했다.  올 가을로 관측되고 있는  중의원 선거를 의식해 야권 내 주도권 확보를 노리는 야당 간 이해관계 조정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선거 쟁점은 △코로나19 대책 △도쿄올림픽 △도정(都政) 실적 등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은 도쿄올림픽과 도정, 경기활성화 등의 다른 이슈를 빨아들인 블랙홀이었다. 주요 야권 후보들은 올림픽 취소 또는 재연기를 내세우며 내년도 축소 개최를 주장한 고이케 지사와 차별화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 같은 어부지리로 고이케 지사는 선거기간 코로나 대응을 강조하며 거리 유세를 한번도 하지 않고 온라인 선거운동만 진행했다. 그는 '재해에 강한 도쿄'를 내걸고 일본판 질병관리대책센터(CDC) 신설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일본 정가에선 향후 고이케 지사가 재선을 발판으로 ‘사상 첫 여성 총리’에 재도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 소속 정당이나 지지 파벌 없이 총리에 오르는 것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다수다. 그는 2016년 지사 당선 다음해인 2017년 중의원 선거에 앞서 희망의당을 창당해 당시 사학스캔들로 궁지에 처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자민당을 위협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민진당과 합당 과정에서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하지 않는 의원들을 배제하겠다고 밝히는 등 자충수로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정계 입문 후 다섯 차례나 당적을 바꿔 '철새 정치인'이란 비판도 있지만 무소속으로 재선 도쿄도지사에 오른 것은 그만큼 권력의 흐름을 잘 읽는다는 평가도 있다.

그의 우파적 정치성향은 향후 한국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는 2018년 이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피해자에 대한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 역대 도지사들이 추도문을 보내는 관례를 거부한 것은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우익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하고 2005년 환경장관 재임 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경력도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밖에 1954년 설립돼 재일한국인과 주재원, 한일 국제결혼 부부의 자녀 등이 재학 중인 도쿄한국학교의 과밀화 해결도 당분한 요원해질 것으로 보인다. 수요에 비해 시설 규모가 작아 2016년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당시 지사가 도내 폐교부지 6,100㎡를 학교 측에 유상 대여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고이케 지사가 백지화하면서 공전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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