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혼 6년차, 생후50일 된 아기가 있는 엄마입니다. 신혼 때는 직장 때문에 주말부부로 지냈어요. 제가 주말에만 집에 갔습니다. 신혼집은 시댁과 차로 10분 거리였고요. 시어머니는 아들이 결혼하고 집을 떠나자 상실감이 든다며 본가에 자주 오기를 바라셨어요. 주말이면 저희 부부를 매번 부르셨어요. 자주 안 온다고 서운해 하셨어요. 하지만 그러실 때마다 더 가기 싫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시부모님은 저희 부부의 경제적 상황, 가족계획 같은 일상까지도 공유해야 가족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저는 두 분이 싫진 않았지만 불편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도대체 아기는 언제 가질 계획이냐”고 물어 보시면, 마치 아기를 가지지 않은 게 큰 빚을 진 것마냥 느껴져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 뒤 임신했다 유산했습니다.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왠지 시부모님에게 원망이 생겼습니다. 결혼한지 4년만에 근무지를 옮겨 주말부부 생활을 끝내고 시댁과 차로 1시간 떨어진 거리로 이사했습니다. 아이가 생겼고 지금은 온전한 가정을 이뤄 매우 행복합니다.
하지만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시부모님은 제가 복직하기 전에 저희 집 근처로 이사와서 손주를 봐주시겠답니다. 제가 ‘자주 부탁은 드릴 텐데 손주 때문에 이사를 오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완곡하게 말씀 드렸지만, 이미 마음을 정하신 것 같습니다. 시부모님의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그보다 앞으로의 간섭과 참견이 더 두렵습니다. 벌써 숨이 막히고 우울해지곤 합니다. 약을 먹을까 싶을 정도로요.
제 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시고 어머니와 자주 다퉜습니다. 그래서 전 대학 가자마자 바로 독립했고, 지금 남편도 술을 즐기지 않고 가정적이어서 좋았어요. 제가 그래서인지 남편이 결혼 전까지 부모와 함께 산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른이 된 뒤에도 부모님에게 사적 부분까지 순종하는 남편도 못마땅하고요. 이런 예민하고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해소할 지, 시부모님과는 어떻게 지내는 게 좋을지 고민스럽습니다.
이재연(가명ㆍ33ㆍ회사원)
재연씨, 저는 성인이 되면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중요한 일이라면 부모와 의논할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과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게 맞습니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면 그 가족이 중심이 돼서 원가족인 부모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서로 모른 척 각자 알아서 잘 살자’가 아니라, 분명하게 지켜야 할 영역은 서로 지키면서 살아야 해요.
육아의 중심도 부모입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조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도와주신다면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 과정의 기본은 협조입니다. 육아에 대한 결정과 책임은 조부모님에게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의논 하에 일정 부분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구분은 쉽지 않습니다. 부모는 ‘주말마다 집에 와라’, ‘왜 자주 전화를 안 하냐, 섭섭하다’, ‘왜 자주 안 오느냐’,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라고 간섭하기 마련이죠. 그리고 그 잔소리가 선을 넘기도 하겠지요. 시부모님이 간섭하는 건 맞지만 아주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보입니다. 대개는 흘려 듣거나, 넘길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지요.
문제는 재연씨가 그걸 너무 힘들고, 괴로워한다는데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듣기 싫은 정도를 넘어 너무 괴로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당신은 예민한 사람 같아요. 늘 날카롭게 구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경계를 넘어서는 외부자극이 들어오면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예민함이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또 재연씨는 예민함을 완화시키고 안정감을 회복시키는 방식이 합리성과 예측성인 것 같습니다.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면 자극을 잘 처리하고 넘어가지만 합리적인 설명이 안 되고, 상대가 과도하게 빠르게 자신의 영역을 치고 들어오면 불안이 상승하고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시부모님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시부모님이 아무리 좋은 의도였어도 그저 당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만으로도 당신은 불편할 거예요. 재연씨는 자신이 영향을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 즉 ‘내 사람’과는 친하고 밀착돼 있고, ‘내 사람’이 힘든 일이 있으면 내 일처럼 여기고 당사자보다 자신이 더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하기도 하지요.
반면 그 영역 밖에 있는 사람과는 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요. 자신이 안전하다고 설정하는 인간관계의 폭이 좁기 때문에 영역 밖에 있는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이, 마음으로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당신의 영역으로 밀고 들어오면 마음이 불편해져요. 당신을 찌르는 것 같고, 불안하고, 당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그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낍니다.
이런 면이 있는 분들은 자신의 영역 밖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호의라 해도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깨져 괴롭습니다. 시부모님은 당신에게 아직은 영역 밖에 있는 사람인 거지요. 요즘 세상에 쉽게 손주를 봐주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큰 호의이고 감사한 일이지만, 당신에게는 당신의 삶을 흐트러뜨리려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당신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설명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당신 의견을 깊게 들을 생각도 없어보입니다.
호의를 앞세우니까 거절하기가 더 어려웠을 거예요. 시부모님 호의를 반박할 이유가 명백하지 않은 상태에서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연씨가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니 마음이 많이 불편하고 괴롭기까지 한 것이지요. 상황진행이 예측이 안되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지도 않고, 결정 과정에서 당신이 주도할 수 있는 부분이 없고, 예상 외로 빨리 진행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시부모님이 이사를 하고, 육아를 주도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상상만해도 당신은 고통스럽고 두려웠을 거예요.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아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민감한 분들은 자신의 삶이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갔을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시부모님이 이사 와서 육아를 좌지우지하는 건 당신이 생각하는 방향이 아닌 거죠. 그래서 공포와 두려움이 느껴지는 겁니다.
아마 친정 부모님이라 해도 그랬을 겁니다. 외부자극에 예민한 이들은 선을 지키는 관계를 선호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도움을 요청하지도, 받지도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요. 자기 영역 안의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달라요. 다시 말해 이기적이거나 야박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괴로운 이유 중에는 친정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나 가족들 때문에 힘들었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 ‘나는 아버지 같은 배우자를 절대 만나지 않을 거야’, ’내 삶은 내가 꾸려갈 거야’라고 은연 중에 생각했을 겁니다. 재연씨는 새로운 가족을 원했을 거예요. 100% 순백색처럼 재연씨의 자율과 주도로 새로운 가족,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을 거예요. 시댁과의 힘든 관계 때문에 부모님과 엮이지 않으면서 오로지 새 가족만으로 새 출발을 하고 싶었을 거예요.
당신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성실하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나 상처를 안 주려고 애쓰는 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 스스로가 예민한 자신의 내면을 잘 이해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 인간은 자신을 잘 알게 될수록 내면이 성장하고, 취약한 부분을 고치고, 내면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어요. 그 과정이 삶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당신 마음의 괴로움이,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당신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걸 깨닫고, 안정감을 회복하고 당신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갔으면 합니다.
아이와의 관계도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는 당신의 영역 안에 있는 가장 핵심적인 존재겠지만, 아이 역시 당신 자신은 아닙니다. 당신이 일상적 자극에 예민하고 그것 때문에 괴롭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이가 당신의 예민함을 건드렸을 때 편안하게 대처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또 당신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폭이 너무 좁고 제한적이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불편함을 겪을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는 문제는 배우자와 먼저 의논해야 해요. 시부모님의 도움이 싫은 게 아니라 우리 아이는 우리가 의논하면서 키우고 싶다, 완벽하진 않아도 우리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해보세요.
시부모님은 나이 등을 감안하면 쉽게 바뀌기 어려울 겁니다. 적당한 선에서 협조를 부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사 오는 데 대해서는 분명하게 거절하는 게 맞습니다. “이사까지 와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마시라”라고 좀 더 분명하게 말씀 드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말씀을 드리고, 주말에 아이를 잠시 맡아주셔도 좋겠다” 정도로 시부모님에게 설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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