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4시 작은 어선을 타고 다다른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화진리 앞 바다. 화진리 어촌계 항구를 벗어나 남쪽으로 10분 정도 지났을 때 화진해수욕장을 바라보자 울창한 숲에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 뒤로 기와지붕을 얹은 주택 여러 채가 눈에 띄었다. 배를 타기 전 자동차로 해수욕장 도로를 지나며 본 이정표에는 화진훈련장으로 표기돼 있었지만, 바다에서 본 해수욕장에는 별장처럼 보이는 집이 여러 채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니 먼저 병사들의 숙소로 보이는 1층짜리 긴 건물이 보였고, 이어 나란히 자리한 주택 2개동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2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병풍처럼 빽빽한 노송에 둘러싸여 바다와 연결되는 계단 2개가 딸린 주택 한 채가 보였다.
이규범 포항 송라면 발전협의회 위원장은 "나란히 붙은 2채는 장교들 휴양소고, 계단이 딸린 집은 2군사령관 휴양소"라며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도 헬기를 타고 와 묵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헬기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십 년간 역대 2군사령관이 여름 한 철 가족을 데리고 와 별장으로 쓰면서 동해 절경을 누렸다"며 "다른 해변에는 있던 군부대 철조망도 철거하는데 이곳은 해마다 철망과 담을 높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항 송라면 주민들로 구성된 송라면 발전협의회는 지난달 29일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에 화진해수욕장 내 군사시설 부지 반환을 촉구했다.
안시호 포항 송라면 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군 훈련장이라지만 시설 전체가 장군을 위한 별장과 부속시설"이라며 "대통령 별장도 반환하는 세상인데 국방부가 군사독재정권 잔재로 주민을 기만하는 현실에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화진해수욕장은 동해안에서 포항과 영덕 경계지점에 위치한 바닷가다. '송라벌'로 불리는 이곳은 나무가 많고 경북지역 3경으로 꼽히는 송라면 내연산 폭포 물줄기가 흘러 담수욕도 가능할 만큼 깨끗한 물로 유명하다. 해안선이 1.6㎞에 달하지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600여m에 불과하다. 나머지 구간을 육군이 통제하는 탓이다. 지난 19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됐지만 군부대 시설로 지난 1993년 지정이 취소됐다.
육군 제2작전사령부는 1982년 6월 화진리 461의3 일대 땅 11만4,870㎡에 사령관 휴양소를 조성했다. 1994년 송라면 주민들이 철거를 요구하자 훈련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사격 훈련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주민들은 "사격 훈련이 연중 3일에 불과하다"며 "군이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포항시도 사령관 휴양소로 이용되는 사실을 확인하고 2010년 육군의 공유수면 사용연장 신청을 불허했다. 공유수면 면적은 전체 면적의 48%인 5만4,994㎡에 달한다.
이에 육군 2작전사령부 예하 50사단 관계자는 "휴양소로 이용된다는 주장은 주민들의 오해다"며 "연간 130여 차례 훈련을 하며 2작전사령부 내 유일하게 육ㆍ해ㆍ공군이 함께 훈련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체 면적의 70%가 국방부 소유고 대체부지를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포항시에 따르면 군이 점유한 면적의 절반 가량인 48%가 공유수면인데다 1만1,427㎡(10%)는 포항시 소유 땅이고 사유지도 5,113㎡(2%)나 포함됐다.
주민반발이 거세자 포항시는 국방부를 상대로 해수욕장 반환을 요구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포항시 관계자는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화진해수욕장 해안가로 둘레길을 계획했지만 2군사령부 시설에 막혀 차질을 빚고 있다"며 "남구에 있는 해병대는 도구해수욕장을 훈련장으로 이용하지만 훈련 때만 쓰는 등 사례를 들어 국방부에 정식으로 반환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