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을 꿈꾼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하루가 행복하고 좋은 옷을 사면 1주일이 행복하지만 좋은 집은 몇 달, 몇 년간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만큼 집은 우리 삶에서 중요하다. 반지하 월세방에서 시작해, 전세로 살다 드디어 내 집을 장만해 입주할 때의 기쁨을 상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좋은 집은 쾌적한 주거 생활을 의미한다. 적정한 규모의 공간이 보장되고, 최소한의 관리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은 집이다. 오래되고 낡아 수시로 결함이 생기거나 너무 비좁아 프라이버시가 보장 안 된다면 만족스러운 주거라고 볼 수 없다. 한국인들은 지금 어떤 집에서 살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주택 노후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주거 면적은 만족할 만큼 증가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주거면적부터 보자. 부동산지인(www.aptgin.com) 사이트에서 추출한 데이터를 보면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합한 공동주택 전용 면적 기준으로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주거 면적은 8.47㎡(약 2.56평) 증가하는 데 그쳤다. 1990년 12월 당시 125만3,635세대가 평균 62.94㎡(약 19평)의 공동 주택에서 살고 있었으나 올해 6월 기준으로는 1,240만3,826세대가 평균 71.41㎡(약 21.6평)에 살고 있다. 30년 동안 주거 공간이 거의 늘어나지 못한 셈이다. 10년 전인 2010년 12월(878만8,760세대) 평균 71.94㎡와 비교하면 오히려 줄어들었다. 전체 가구 가운데 20~30평대 공동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가 35.2%로 가장 많았으며, 30~40평대가 33.7%로 뒤를 이었다. 20평 이하 가구도 21.4%나 됐다.
특히 서울의 가구 평균 주거 면적 감소가 눈에 띈다. 서울은 1990년만 해도 가구 평균 주거 면적이 79㎡로 전국 최대를 기록했으나 올해 6월에는 71㎡로 18개 시도 중 10위권 아래로 내려갔다. 30년 전과 비교해 10% 더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다. 반면 경기 지역은 1990년 가구당 58㎡(약 17.5평)에서 올해 6월 74㎡(22.3평)로 늘어나, 세종특별시를 제외하면 18개 시도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증가를 나타냈다. 수도권 확장과 신도시 개발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주택 노후화는 어떨까. 국토교통부의 2019 건축물 현황 통계에 따르면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은 전국적으로 37.8%(동수 기준)에 이른다. 건축물 10개 중 약 4곳이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그중 주거용은 47%로 상업용 27%에 비해 노후화된 건축물 비중이 훨씬 높다. 노후 주택에 대한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부동산지인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0년 6월 현재 전국 아파트, 오피스텔 등 공동 주택 1,240만3,826가구 가운데 30년 이상 된 주택에서 살고 있는 가구 비중은 8.5%이다. 2010년 1.7%에 비해 10년 새 5배나 늘어났다. 기준을 25년 이상 된 공동 주택으로 확대하면 노후화는 더 심각해, 2010년 5.2%에서 2020년 23.4%로 크게 늘었다. 4가구 중 1곳은 25년 이상의 오래된 주택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역별로 보면 대전이 25년 이상 된 주택 거주 가구 비중이 36.2%로 가장 높았고, 30년 노후화 비중에서는 서울과 인천이 각각 15.1%와 12.9%로 가장 높았다. 30년 노후화 비중이 가장 낮은 곳은 역시 세종이었고 경기도 4.5%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197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 공동 주택 건설 붐이 본격화했음을 고려하면 30~40년 전부터 대량으로 짓기 공공주택의 노후화 비중이 향후 급격히 높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추세다.
주택 노후화는 주거 만족도를 크게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안전 문제도 일으킨다. 2000년대 이후 공동 주택은 발코니 확장이나 커뮤니티 시설 확대, 인테리어 고급화 등이 이뤄졌지만, 노후 주택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현재 주거 트렌드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특히 20, 30대들은 오래된 주택에서 거주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고 있다. 주택 유지와 관리 비용 증가, 층간 소음, 단지 슬럼화 등 여러 가지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노후화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안전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는 노후화된 건축물을 불량 건축물과 한데 묶어 훼손 혹은 일부 멸실되어 붕괴 및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건축물이라고 규정한다. 랜드북 세이프티(safety.landbook.net)를 통해 데이터를 추출해 본 결과, 서울의 30년 이상의 노후화된 건물이 구별로 수천 개씩 밀집해 있다. 특히 성북, 종로, 동대문, 용산구의 노후건물 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주택재개발과 재건축 이외에도 도시 재생 뉴딜 사업 등 주택 노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이 동원돼야 하는 시점이다.
노후화와 함께 주거 면적 확대와 재구성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유행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부각됐고 재택근무, 원격 강의 등으로 인해 집 안에서도 업무를 하고 공부를 하는 분리, 독립된 공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김진유 교수는 우리나라 주거 공간이 좁은 것은 정부의 공공 주택 정책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김 교수는 "국민주택규모(전용면적 85㎡)는 1972년 제정된 이후 지난 50년 가까이 단 한 뼘도 늘지 않았고 소형 주택과 공공 임대는 60㎡를 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국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이나 주관적인 기대치에 제도적 환경이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주거 공간의 노후화나 주거 공간의 쾌적화를 위해 정부의 정책 방향과 새로운 기준 수립이 우선 고려되어야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자원이 제한돼 당장 실행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제약을 극복할 주목할 만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기술을 결합해 한정된 공간의 효율을 높이고 공유 공간의 효과적 활용을 실현하는 스타트업들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 등의 첨단 정보기술을 이용해 도시 슬럼화와 주택 노후화, 청년과 취약계층의 주거 복지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한정된 토지 자원을 이용해 어떻게 공간 효율을 최적화할지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미래의 한국인들이 더 넉넉하고 쾌적한 주거 공간을 누릴 수 있으려면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과 IT기술의 결합이 만들어낼 미래에 기대가 큰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일보-포스텍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