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재앙이 현실로? 사막 메뚜기떼 습격 'A to Z'

입력
2020.07.18 18:00
'갈로아' 김도윤 작가와 함께보는 사막 메뚜기 현상①
동아프리카·중동·남아시아 넘어 중국까지 식량 위협
하루에 3.5만 명 분 먹어 치워...1일 150㎞ 날아다녀

편집자주

식량안보 위협 요인으로 떠오른 사막 메뚜기떼. 어디서 왜 창궐했고, 어떤 특성을 갖고 있기에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집어 넣고 있는 걸까요.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지, 한국은 사막 메뚜기떼의 습격에서 안전한 것인지. 곤충 전문가이자 곤충 덕후로 알려진 인물이죠. 책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 등을 펴낸 '갈로아' 김도윤 작가와 함께 두 차례에 걸쳐 살펴봅니다.



수천만 마리 사막 메뚜기떼가 전 세계의 농경지 곳곳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하늘을 뒤덮어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구름같을 정도인데요.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이집트에 닥쳤던 여덟번째 재앙이 떠오르기도 하죠. 1월부터 나타난 사막 메뚜기떼는 현재까지 동아프리카와 중동 및 남아시아에 걸쳐 23개 나라를 공격한 것으로 파악되는데요. 세계은행은 70년 만의 최대 피해 규모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한국과 가까운 중국과 동남아시아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고요.

3개월 만에 개체수 20배로 늘리는 놀라운 번식력

'사막 메뚜기(Desert locust·학명 Schistocerca gregaria)'는 한국의 각시메뚜기와 같은 아과에 속하는 종인데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주로 아프리카에 분포하는 이 메뚜기는 알 상태에서 건기를 버티다 우기가 되면 깨어난다고 합니다. 번식력도 강해 암컷은 모래 토양 10~15㎝ 아래에 한 번에 80~160개의 알을 낳습니다. 일생에 6~11일 간격으로 최소 3번 이상 산란할 수 있고요. 3개월마다 약 20배씩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됩니다.

사막 메뚜기는 곡물, 과일, 나무, 풀, 꽃 등등 가리지 않고 대량의 식물을 골고루 먹는데요. 떼를 이룰 경우 그 면적이 1㎢에서 수백㎢에 달하며, 1㎢당 4,000만~8,000만마리의 메뚜기가 뭉쳐다닌다고 합니다. 이 사막 메뚜기는 매일 자기 몸무게인 2g 정도를 먹는다고 하는데요. 1㎢ 4,000만 마리떼를 기준으로 보면 하루 동안 먹는 양이 약 3만5,000인 분의 식량과 맞먹는다고 하네요.

이동 능력도 어마무시합니다. 하루에 150㎞까지 날아갈 수 있죠. 1987년~1988년 사이 발생한 사막 메뚜기떼가 그동안 사상 최대 규모로 꼽혔는데요. 이 메뚜기떼는 서아프리카에서 발생, 날아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의 서인도제도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대륙을 넘나드는 기동력이 대단하죠? 그러나 최근의 사막 메뚜기떼는 계절풍을 타고 계속해서 번식하며 무리를 키워 이동, 역대 기록을 연일 자체 경신하는 중입니다.



혼자 있는 고독형이 떼로 다니는 군집형으로 변해

FAO에 따르면 5월까지 파악된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케냐 등 아프리카 3개 나라 사막 메뚜기만 해도 4,000억 마리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곤충 전문가 '갈로아' 김도윤 작가는 사막 메뚜기가 이렇듯 창궐하게 된 원인을 두고 "아프리카 기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어요. 해외 전문가들 역시 지난해 말 아프리카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발생한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 '사이클론'을 주목하고 있죠.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이상 기후가 지속돼 인도양 지역에서 사이클론이 빈발, 강수량이 늘면서 메뚜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봤는데요.

지구온난화로 인도양 동쪽과 서쪽 해수면의 온도차가 커졌고, 아프리카 인근 수온이 평년보다 1~2℃ 상승하면서 저기압이 발생해 폭우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됩니다. 앞서 오래 이어진 건기로 사막 메뚜기 알들은 순차적으로 부화하지 않고 땅 속에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면서 습한 환경이 만들어져 한꺼번에 부화하게 됐다는 것이죠. 이례적인 폭우와 함께 사막 메뚜기의 먹이인 식물도 쑥쑥 자라 이를 갉아먹고 번식하며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 작가는 환경적 영향과 맞물려 이번 사태를 부른 사막 메뚜기떼의 가장 큰 특징은 "개체 수가 많아져 특정 밀도에 도달했을 때 혼자 움직이던 '고독형'이 무리를 이루는 '군집형'으로 변하면서 겉모습과 행동이 바뀐다는 데 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사막 메뚜기는 밀집도가 높아져 고독형에서 군집형으로 바뀔 때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세로토닌이 분비되며 특성이 변하는데요. 한꺼번에 사막 메뚜기들이 깨어나면서 높은 밀도를 형성, 초기부터 군집형으로 돌변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막 메뚜기는 고독형일 땐 다른 개체를 거부하는 행동을 보이는 반면, 군집형이 되고나면 밀집한 채 서로 잘 지내고 다른 개체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몸 색깔도 노란색으로 물들고, 날개 또한 비행에 적합하도록 길어집니다. 시력, 후각, 면역체계, 신경회로도 변화를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로 인해 떼를 이뤄 서로 같은 방향으로 비행하고 작물을 먹어치운 뒤 다함께 먹을 곳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다니면서 식량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죠.

FAO "개체 수 400배로 늘 것"...전 세계 쌀값도 영향 받을 수 있어

1월쯤 발생해 5월까지 동아프리카의 케냐,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등을 점령한 사막 메뚜기떼는 중동 사우디 아라비아와 예멘, 이란을 거쳐 남아시아 파키스탄, 인도로 이동했는데요. 인도와 파키스탄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죠. 이외에 남아메리카 파라과이에서 발생한 또 다른 메뚜기떼는 인접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곡창 지대도 위협하고 있고요. 엄청난 이동력과 식성 때문에 여러 나라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요.

계속해서 사막 메뚜기떼 몸집이 커지고 있는데다 옮겨다니며 워낙 방대한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조차 어렵습니다. 다만 각국의 보고에 따르면 1월부터 6월까지 사막 메뚜기떼는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만 100만 헥타르(ha)에 달하는 대지에 나타나 피해를 입힌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로 인해 4,200만 명이 식량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인도 역시 공격받은 면적이 555만 헥타르에 이르고 100억 루피(약 1,700억 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하고요.

동아프리카 경제에서 농업과 목축은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죠.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사막 메뚜기떼로 인해 올해 에티오피아 물가상승률이 20%를 넘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올초 케냐를 집어삼킨 사막 메뚜기떼 2,000억 마리가 하루동안 먹어치운 곡물이 독일 전체 인구의 하루 곡물 소비량과 맞먹는다는 통계도 나왔는데요. 베트남 등에 상륙할 경우 세계적으로 쌀값이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달까지 FAO에 요청된 각국의 구제 금액만 3억1,200만 달러(약 3,745억원)에 달합니다. 세계은행은 사막 메뚜기떼의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 방제할 수 있도록 5억 달러(약 6,000억 원)의 긴급 자금을 저금리에 빌려주기로 결정했죠. 이와 함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작물 및 가축의 잠재적 피해가 올해 말까지 85억 달러(약 10조2,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 추산했습니다. 대응을 한다고 해도 25억 달러(약 3조5억 원) 수준의 손실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봤고요.

수확시기와 맞물려 5월 규모를 키운 사막 메뚜기떼는 7월까지 계속해서 번식하며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FAO는 만약 막아내지 못할 경우 하반기에는 사막 메뚜기가 40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는데요. 보고서에서는 "사막 메뚜기는 2,900만㎢에 달하는 거대한 지역, 65개국 이상으로 퍼져나가 전체 지표면의 20% 이상을 뒤덮을 수 있다"라며 "세계 인구의 10%인 수억 명이 식량 부족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인류에게 거대한 위협이 돼버린 사막 메뚜기떼,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걸까요?

이유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