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노사정 대타협은 외환위기라는 절체절명의 '국난'과 정부의 '강한 의지' 덕분에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미 실업자가 대거 쏟아지는 현실에서 노동계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정부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극심한 상황이라 경영계도 절박한 심정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1998년 2월 노사정은 ‘정리해고제 법제화’와 ‘파견법 제정’에 합의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촉진하는 이 합의안에 노동계가 눈물을 머금고 서명한 데는 유례 없는 경제 위기에 직면한 대내외적 영향이 컸다. IMF는 한국에 차관 도입 조건으로 정리해고 법제화 등의 사회적 대화를 요구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나서 합의안 도출에 총력을 기울였다. 노동계는 대신 사회보장제도 확충, 전교조의 합법화, 공무원노조의 전 단계인 공무원 직장협의회 설치 등을 약속받았다.
이번 사회적 대화도 국가적인 경제 위기로 촉발됐다는 점에서는 22년 전과 같지만, 노사정의 위기 의식은 과거와 온도차가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사회적 대화의 성사나 타협은 경제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고, 정부 의지가 강할 때 이뤄진다”며 “이번에는 국가 기반이 흔들렸던 외환위기 때와 달리 피해가 관광ㆍ서비스업, 제조업 일부에 한정됐고 정부와 경영계의 태도도 미온적이었다”고 설명했다.
1998년 노사정 대타협으로 노동시장 유연화가 급격히 진행됐다는 평가도 민주노총 내부의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걸림돌이 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노총에서는 당시 대타협을 노동시장 유연화를 만들어낸 과오, 오류라고 생각하는 게 강하다”며 “이번에 산별노조에서 확실한 해고 금지, 고용 보장 약속을 받아내지 않으면 합의할 수 없다고 주장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노사정 대타협 당시 민주노총이 요구했던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은 바로 이뤄지지 않았고,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노사정위원회(현 경사노위)에서 탈퇴해 지금까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