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의 노사정 대타협이 협약식을 불과 15분 앞두고 끝내 불발됐다. 이날 협약식 참여자들이 달기로 했던 노란색 프리지아 브로치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폐기됐다. 프리지아의 꽃말은 '신뢰'다.
국무총리실은 1일 오전 10시 15분쯤 긴급 공지를 통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식’이 민주노총의 불참 결정으로 취소됐다고 밝혔다. 출입기자단에 노사정 합의문 등 보도자료까지 배포, 서명만 남겨둔 상태였다. 노사정 합의를 중재한 정세균 국무총리는 물론이고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은 총리공관으로 향하고 있거나 이미 도착한 상황이었다.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이날 협약식은 차담회로 대체됐다. 서명식 직후 열릴 예정이었던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관련 브리핑도 취소됐다. 민주노총의 빈자리를 놓고 참석자들은 '사과 요구' '협의는 없다' 등 낙담을 나눠야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협약식 참석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전날 열린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 일부 산별 노조와 지역본부 대표자들이 합의안에 거세게 반대하면서 내부 추인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다시 한 번 중집을 소집해 의견수렴에 나서고, 여기에서도 추인이 무산될 경우 협약식에 참석해 합의안에 서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거취’까지 거론하는 등 사퇴까지 시사하며 협약식 강행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반대파들이 오전부터 민주노총에 집결, 노사정 합의를 폐기하라며 김 위원장을 사실상 감금하는 사태를 벌였다. 민주노총 정문부터 김 위원장을 둘러싸고 ‘도대체 누구의 위원장이냐’ ‘지금 당장 사퇴하고 합의 폐기하라’ ‘폐기 선언할 때까지 가둬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는 중집이 열린 민주노총 대회의장에 들어가 ‘노동자 다 죽이는 노사정 야합 즉각 폐기’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었고, 일부는 중집이 열리는 동안 대회의장 밖 복도를 가득 채웠다. 김 위원장은 꼼짝할 수 없게 돼 물리적으로도 협약식 현장에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로써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합의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민주노총의 노사정 대화 참여는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번번이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혀 들어가지 못했다. 코피를 쏟으며 구급차에 실려간 김 위원장의 거취도 불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