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담용으로 길러지던 사육곰 22마리, 미국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사연

입력
2020.07.01 15:28
내년 미국 콜로라도주 보호구역으로 이주 목표 
동물보호단체들 "국내에 곰들 위한 보호 시설 부재 탓"


웅담 판매를 위해 사육되던 국내 사육곰 22마리가 미국의 보호구역(생츄어리)으로 가게 됐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1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육곰 농가를 설득해 22마리의 사육곰 구조와 폐업에 대해 합의했다”며 “구조한 곰들은 내년 미국 콜로라도주에 위치한 와일드 애니멀 생츄어리(TWAS)로 이주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사육곰은 멸종위기종의 국가 간 거래에 관한 협약(사이테스·CITES) Ⅰ급인 반달가슴곰이다. 동물자유연대는 사육곰 이송을 사이테스 Ⅰ급 수출입 절차에 맞춰 진행해야 하는 만큼 국내 환경부·검역본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내 수입 허가와 운송은 TWAS가 맡는다. 이곳은 2018년 동물자유연대가 3년 동안 폐쇄된 콘크리트 방에 갇혀있던 사자 가족을 구조해 이주시켰던 곳이다.

동물자유연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국 내 수입 허가가 평소보다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년에 이주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곰들은 지금까지 지내온 사육 시설에 지내게 된다.  동물자유연대는 사육곰의 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한편 사육 시설을 청소하고 곰의 먹이를 다양화하는 등 사육 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처럼 사육곰들을 해외 생츄어리로 이동시키는 데에는 국내에 사육곰을 구조해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인의 영리 목적 사육에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사육곰을 방치하고 있다. 정부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총 967개체의 사육곰을 중성화시키면서 한 때 1,400여마리에 달했던 반달가슴곰은 줄고 있지만 이후 더 이상의 관련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시민사회와 국회의 노력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예산 수정안에 사육곰 생츄어리 관련 비용이 증액 반영됐지만, 결국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예산에 오르지 못했다. 때문에 민간단체인 동물단체가 나서 일부를 구조하게 됐는데, 구조를 해도 곰들은 갈 곳이 없는 상황이 됐다. 김수진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정부는 정책 실패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사육곰을 방치하고 있다”며 “정부가 나서 농가 폐업을 유도하고 생츄어리를 설립하는 것만이 사육곰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구조된 사육곰 22마리는 전체 431마리 가운데 약 5%에 불과하다. 1981년 정부 권장으로 시작된 웅담채취 목적의 사육곰 산업은 사실상 사양화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국내에는 431마리 사육곰이 최소한의 복지도 보장받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어 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국내에는 중대형 포유류를 위한 보호공간이 없기 때문에 곰들을 해외 생츄어리로 이주해야 했다”며 “남은 사육곰은 국내 생츄어리에서 보호해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촉구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달 사육곰의 비인도적 도살과 곰고기 취식 실태를 알린 뒤 사육곰 관련 불법행위를 엄중 처벌하고 정부에 사육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청원을 진행하고 있다. 청원에는 지난달 30일 기준 1만3,600여명이 참여한 상태다.

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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