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영화 제작자나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들은 넷플릭스에만 줄 서 있어요. 업무가 폭주해 넷플릭스의 일 진행 속도가 두세 배 정도 느려졌다고 합니다.”(중급 영화 투자배급사 대표)
한국에서 질주하던 넷플릭스는 최근 날개까지 달았다. 다른 산업 대부분의 분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맥을 못 추고 있는 반면, 넷플릭스는 되레 호황을 맞았다. 넷플릭스에 줄 선 회사 중엔 영화사들이 유난히 많다. 코로나19로 영화의 극장 개봉이 어려워지면서 넷플릭스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코로나19로 개봉 길이 막힌 영화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 직행이라는 새 길을 뚫어 손실을 면하자 영화인들의 발길이 더 쏠리고 있다. ‘사냥의 시간’은 제작비 125억원 이상의 금액을 넷플릭스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사들은 이미 제작한 영화를 팔려는 제안뿐 아니라 신작 투자 의사까지 문의한다. 넷플릭스가 드라마 시리즈를 선호한다는 점을 감안해 아예 드라마 제작에 뛰어드는 영화사들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 넷플릭스는 진공청소기처럼 뛰어난 인재들과 흥미진진한 소재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영화 ‘도가니’(2011)와 ‘수상한 그녀’(2014) 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넷플릭스와 손잡고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게임’ 제작에 나섰다. 배우 정우성이 첫 제작자로 나서는 SF드라마 시리즈 ‘고요의 바다’도 넷플릭스와 손 잡았다. 영화 ‘비밀의 없다’(2016)의 이경미 감독은 드라마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을, 영화 ‘부산행’(2016)의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 시리즈 ‘지옥’을, ‘완벽한 타인’(2018)의 이재규 감독은 좀비 드라마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을 넷플릭스와 함께 한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2012)과 ‘공작’(2018)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도 대작 드라마 시리즈 ‘수리남’ 제작을 준비 중인데, 넷플릭스와 손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달 30일 김보통 작가의 인기 웹툰 ‘D.P.’를 바탕으로 한 동명 드라마 시리즈를 한준희 감독과 제작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 감독은 첫 영화 ‘차이나타운’(2015)으로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대 받아 충무로 기대주로 평가받아 왔다. 한 중견 영화사 대표는 “극장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는 바람에 영화 감독들의 드라마 연출이 급증하고 있다”며 “기존 방송국은 편성권을 쥐고 제작비 삭감 등을 요구하는 일종의 갑(甲)이라면,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이런 부분들이 없어 훨씬 더 감독들에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K콘텐츠 확보에 주력하는 건 한류 때문이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아시아지사가 있는 싱가포르 이외에 지사가 있는 곳은 콘텐츠 강국 한국과 인도, 일본뿐”이라며 “아시아 시장 경쟁력을 위해 한국 콘텐츠 확보 노력은 앞으로 더 적극적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