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6월 19일 초선 비례대표 의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백종원씨 같은 분은 어때요?”라고 물으면서 화제를 만들었다. 곧바로 백종원씨가 “정치에 뜻이 없다”고 밝히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논란과 후폭풍은 컸다. 당내에서는 이번 사건을 ‘메기 효과’를 통해 대선주자들을 분발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정당정치를 희화화한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거셌다. 장제원 의원은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세간에서는 통합당 후보를 놓고 ‘백종원보다 임영웅이지’, ‘아니야, 영탁이야’, ‘우리 임영웅이 왜 통합당을 가냐’라는 조롱 섞인 농담이 돌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사람을 존중하고 키워야 할 당이 비대위원장의 허언으로 이렇게 희화화되는 모습이 참 씁쓸하다”고 했다.
킹메이커를 자처한 김 위원장이 백씨를 호출한 이번 사건은 21세기 시대 상황에 부합하는 리더십과 정당정치의 모습과 관련하여 많은 토론거리를 주고 있다. 유권자들이 ‘국민참여경선제도’와 ‘시민참여형 네트워크정당’을 통해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 시민주권시대에 외부의 인기스타를 영입하려는 킹메이커의 역할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물론 여야를 넘나들었던 그의 행적도 피할 수 없는 평가거리다.
2016년 1월 15일 새누리당 이장우 대변인은 “역대 정권마다 정부 요직에 올랐다가 박 대통령의 경제 참모, 안철수 의원의 정치 멘토 그리고 문재인 대표의 선거 총책까지 김 위원장의 ‘갈지(之)자’ 행보 또한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종인은 왜 ‘갈지(之)자’ 행보를 한다는 비난을 마다하지 않고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것일까? 그가 독일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여러 차례 언급한 점을 볼 때, 그의 직업적 소명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그의 리더십도 베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단순히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균형만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양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민주적 리더십’보다는 ‘카리스마 리더십’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면서 ‘민주정당’보다는 1인 보스가 정당을 이끄는 ‘머신정당’을 지지했다.
또한 베버는 국민의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된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통치하는 ‘지도자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대중의 갈채와 환호를 받는 로마의 시저와 같은 지도자의 출현이 후발국가인 독일에 필요하다고 보고 이런 모습을 ‘지도자 민주주의’로 개념화했다. 이런 베버의 노선은 히틀러의 선동정치가 독일을 장악하도록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킹메이커로서 김종인의 소명의식은 베버가 말한 카리스마 리더십과 머신정당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여민주주의’나 ‘숙의민주주의’와 같은 21세기 시민정치의 흐름과 충돌한다. 이번 김종인의 백종원 호출 사건은 ‘3김 정치’를 닮았다. YS가 김문수와 홍준표를 영입하자 DJ는 정동영과 추미애 카드로 맞섰다. 3김은 1인 중심의 보스정당이었기에 정당 자체의 인재 양성보다는 외부 인사 영입에 의존했다. 당연히 보스정당은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취약했고, 상향식 공천도 없었다.
책사와 도사들이 킹메이커가 되어 대통령을 만드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투표에 참여하는 주권자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킹메이커인 시대다. 책사와 도사를 대신하여 깨어 있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당정치와 시민정치가 중심이 되는 게 맞다.
변화된 시민정치의 시대임에도 여야 정당이 번갈아서 킹메이커를 자꾸 소환하는 모습은 씁쓸하다. 이것은 우리 정당의 시민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극단적인 지지층을 결집하는 진영 논리의 좌우 정당개념에서 환골탈태해야 한다. 중도 성향의 시민들이 정당의 중심을 잡는 중도 수렴의 정당 기반을 만드는 정당 개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