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역 숙박 여행을 유도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올해 여행 테마로 ‘야간관광 100선’을 선정했다. 이 중 7월에 가볼 만한 다섯 곳을 소개한다. 낮과는 다른 분위기로 감성을 자극할 여행 프로그램도 포함돼 있다.
안동의 여름밤은 은은하고 몽환적이다. 안동댐 아래 월영교가 밤마다 붉은빛과 보랏빛 조명을 밝힌다. 월영교는 안동댐 바로 아래 보조댐 호수에 설치한 길이 387m 목책 인도교로,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 불리는 ‘원이 엄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설계했다.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애절한 편지를 쓰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엮었던 조선시대 여성이다. 1998년 인근 택지 개발 공사 당시 한 묘에서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미투리를 형상화한 월영교 난간은 맵시 있고, 다리 한가운데에 자리한 월영정은 운치 있다.
안동물문화관 전망대에 오르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호수, 다리가 어우러진 풍광이 한 폭의 수채화다. 월영교에서는 주말 3회(오후 12시30분, 6시30분, 8시30분) 분수를 가동한다. 물줄기가 쏟아지는 여름밤의 산책이 특히 시원하고 좋은 이유다. 월영교에서 안동민속촌으로 가는 길에는 알록달록한 유등이 반긴다. 하회탈, 각시탈, 엄마 까투리 등 안동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수면을 밝힌다.
부여 궁남지는 백제 왕실의 별궁 연못이다. 위성지도로 보면 호수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그 조각조각이 연꽃 습지다. 6월에는 수련이 만발하고, 7월이면 백련과 홍련 향기가 그윽하다. 연못 가운데 작은 섬에는 포룡정이 자리한다. 섬 안으로 가는 다리를 걷다 보면 잉어 떼가 몰려들고, 연못에선 분수가 하늘 높이 솟구친다. 헝클어진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뉘엿뉘엿 해가 지면 궁남지 일대에 경관 조명이 불을 밝힌다. 다리와 포룡정의 조명이 백제의 꿈처럼 수면에 비친다.
궁남지에서 1km남짓 떨어진 정림사지도 오후 10시까지 야간 관람을 할 수 있다. 읍내 중심부에 자리 잡은 절터 정문으로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에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9호)이 빛을 발한다. 단아하면서도 도도한 기품이 느껴진다. 달빛이라도 비치면 1,400년 견뎌온 석탑이 광활한 우주와 교감을 나누는 것처럼 신비롭다.
부산 해운대와 광안리는 대한민국에서 밤이 가장 화려한 곳이다. 여기에 송도해수욕장이 가세했다. 주변 야경이 아름다운 송도구름산책로, 밤바다를 가로지르는 송도해상케이블카 등 늦은 밤에도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구름산책로는 2015년에 건립된 걷기 전용 해상 교량이다. 해변 동쪽의 거북섬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이어진다. 반대편은 바다로 뻗어 대형 선박과 남항대교의 유려한 전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365m에 이르는 산책로 중간 강화유리에서는 발아래로 출렁이는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밤이면 경관 조명이 주변 야경과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그 위로는 송도해상케이블카가 오색 불빛을 반짝이며 밤하늘을 가른다. 해상케이블카는 송림공원에서 암남공원까지 1.62km 를 연결한다. 최고 높이가 86m에 달해 송도해수욕장과 영도 일대 부산 앞바다가 한눈에 담긴다. 먼 바다에 대형 선박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모습도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을 이용하면 짜릿함이 배가된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장착돼 있어 나만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
보트를 타고 돌아보는 ‘통영밤바다야경투어’는 낮보다 아름다운 통영의 밤을 만끽할 특별한 경험이다. 도남항의 통영해양스포츠센터를 출발해 강구안과 충무교, 통영대교를 돌아온다. 약 50분 코스로 입담 좋은 항해사가 들려주는 통영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보트는 최고 시속 92km를 달릴 수 있는 쾌속선이지만, 실제 투어에서는 15km 정도로 이동한다. 스릴보다 밤바다의 운치를 만끽하기 위해서다. 섬으로 막힌 통영 앞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해 흔들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도남항 동방파제에는 연필 모양 등대가 있다. 청마 유치환과 소설가 박경리 등을 배출한 예향 통영을 상징한다. 충무교 아래에도 몽당연필 모양의 빨간 등대가 있다. 통영운하를 통과할 때면 물길을 사이에 두고 미수동 식당가의 네온사인과 도로변 조명이 수면에 반짝인다. 충무교 교각에는 통영 출신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과 ‘운하교’를 본뜬 벽화를 설치했다. 충무교를 지나면 통영대교가 성큼 다가선다. 당동과 미수동을 잇는 591m 다리로 중앙 아치에 설치한 190여개 등에서 알록달록한 빛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통영밤바다야경투어는 금ㆍ토ㆍ일요일과 공휴일 각 3회(오후 6시30분, 7시30분, 8시30분) 운영한다. 10인 이상 예약하면 평일에도 즐길 수 있다. 최대 탑승 인원 20명, 승선료는 1인 2만원이다.
‘나이트드림’은 강진을 대표하는 야간관광 프로그램으로 6월부터 10월까지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진행한다. 읍내 오감통에서 출발한 버스는 첫 번째 목적지로 가우도를 찾는다. 30여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섬이다. 출렁다리를 건너 섬 둘레를 도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함께해(海)길’이란 이름처럼 푸른 바다를 끼고 걷는다. 경사가 완만하고 목재 산책로로 연결돼 있어 걷기 편하다. 가우도 산책이 끝나면 강진 읍내로 이동해 추억의 테마 거리 ‘청춘 생각대로 극장통’에서 각자 식사한다. 어느 식당이든 상차림이 푸짐하다.
오후 7시10분부터는 사의재에서 마당극이 펼쳐진다.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묵었다는 곳이다. 귀양 온 선비를 살갑게 챙기는 주모와 딸 등 마당극의 등장인물은 모두 지역 주민이다. 생업에 종사하며 틈틈이 연습한 터라 실수가 있지만 그마저도 재미다. 마지막에는 배우와 관객이 어우러져 신명나는 춤판을 벌인다.
나이트드림 버스의 종착지는 세계모란공원이다. 강진 출신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주제로 꾸민 공원이다. 거대한 유리온실에 세계 각국의 화려한 모란이 가득하고, 산책로에는 계절마다 꽃이 피고 진다. 어둠이 내리고 오색 조명이 켜지면 삼삼오오 돗자리에 모여 앉아 피크닉이 시작된다. 읍내 통닭 골목에서 온 ‘시골닭강정’에 지역 청년들이 만든 맥주를 곁들인다. 지역 예술가들의 야외 공연도 펼쳐진다. 낭만적인 시 한 편, 노래 한 곡에 한여름밤의 꿈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