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불황이 장기간 이어지며 부상했던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정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힘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엘리트 정치'의 전복을 기치로 내건 이들에게 열광했던 대중이 의학과 과학에 의지해야 하는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다시 기성 정치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유럽에서 코로나19로 13만명 이상이 숨지고 대륙 전체가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집권 여당이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면서 "극우 대신 중도 정치가 유럽을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로뉴스도 "독일 극우세력의 부상, 중유럽의 권위주의 정부 확산, 스페인의 민족주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을 이끈 근래의 유럽 정치가 전복됐다"고 진단했다.
실제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대한 지지도는 지난 1월 14%에서 지난 26일 10%로 떨어진 반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보수 성향 기독민주당(CDU)ㆍ기독사회당 연합의 지지율은 같은 기간 10%포인트 오른 38%로 2017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이 이끄는 극우정당동맹의 지지도가 지난 1월 32%에서 최근 26%로 하락한 데 비해 중도성향인 주세페 콘테 총리의 지지도는 61%로 역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같은 유럽 주요국 집권 여당의 인기가 코로나19 방역 관리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최근 유럽에서도 재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배타적 국수주의와 포퓰리즘이 득세한 미국ㆍ브라질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나은 평가를 받는 정도다. 이탈리아 보코니대의 캐서린 드 브리스 교수는 "이번 위기로 유럽 집권당들은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는 "극우 정치인들이 주장해온 '고립주의'를 코로나19 봉쇄령으로 간접 체험한 대중은 이것이 얼마나 슬픈 현실인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경제난에 따른 사회 불만이 이어져 포퓰리즘이 다시 태동할 수도 있다. WSJ는 "유럽의 극우정당과 민족주의 정당들이 직면한 지금의 위기는 과거와의 결별을 상징한다"면서도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동 제한 등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조치를 시행했다는 사실은 향후 민족주의 정치인들에게 또 다시 '실탄'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