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4 명 중 1명, 단기계약직 첫발... 인국공 사태 이유 있는 분노

입력
2020.06.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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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 10%… 전체 2배 넘어
첫 직장 정규직은 57%에 그쳐
1년 후 정규직 될 확률 11% 불과
 OECD 평균 36% 크게 못 미쳐



 공공기관 계약직 연구원인 이효진(30ㆍ가명)씨가 지금의 직장에 들어간 건 약 3년 전. 2016년 석사과정을 졸업한 뒤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고스펙(구직에 필요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등이 높다는 말)’에도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계를 위해 현재의 직장에 들어갔다.  급여는 최저임금과 큰 차이가 없었고, 프로젝트에 따라 길게는 10달에서 짧게는 두 달에 한번 진행되는 재고용 절차에 고용은 항상 불안했다. 책임자의 갑질에도 참고 일하는 등 비정규직의 설움은 일상이 됐다. 이씨는 “나는 정규직 전환 여지가 없는데,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소식을 듣고 심란했다”며 “애초  좋은 일자리가 적으니 청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의 보안검색 직원 직고용을 둘러싼 청년층의 혼란은 갈수록 심화하는 청년 고용난과 무관치 않다. 공사와 같이 청년들이 가고 싶어하는 좋은 일자리는 극소수인데 ‘노력과 무관하게’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논쟁적인 주장이 공정성 논란으로 비화됐다. 임금과 일자리 안정성 등 근로 조건에서 질적 차이를 두는 분리벽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그대로 둔 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지속 추진할 경우 매번 같은 논란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청년들의 고용난은 심각한 상태다. 28일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15~29세) 실업률은 10.3%로 전체 실업률(4.5%)의 2배를 뛰어넘는다. 청년 실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특수한 상황만도 아니다. 청년 실업률은 2014년 이후 매년 9.0%를 넘는다. 매년 전체 실업률은 3%대에 머물러 있는 것과 비교하면 청년 실업은 고질적인 셈이다.

고용 안정성에서도 청년 일자리는 악화 일로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를 보면 지난해 청년의 졸업 후 첫 직장이 정규직인 경우는 56.7%에 그쳤다. 2008년엔 63.1%가 정규직으로 첫 직장을 얻었다. 또 지난해 1년 이하 단기계약직에서 일을 시작한 청년은 24.7%에 이른다. 2008년엔 단 11.2%만이 단기계약직이었다. 그만큼 청년들의 일자리 안정성이 악화됐다는 얘기다.

이처럼 청년들을 옥죄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된 상황에서 ‘눈을 낮춰라’와 같은 기성세대의 조언은 무용지물이다.  4대보험이 모두 적용되고 ‘칼퇴’를 꿈꿀 수 있는 안정된 정규직 직장이 공기업과 대기업에 한정돼 있다는 현실을 성장과정에서 체득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시직 직원이 1년후 안정적인 정규직이 될 확률은 11.1%로, OECD 국가 평균인 35.7%에 크게 못 미친다. 일한 기간이 3년이 넘으면 OECD 대부분 국가에서 비정규직 50% 이상이 정규직이 된 반면, 한국은 22%에 그친다. 청년들이 애초부터 ‘정규직’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청년들은 더 나은 시작을 위해 구직기간을 늘려가며 좁은 문을 노리는 실정이다. 지난해 청년들의 구직기간은 평균 10.8개월이다. 구직기간이 3년이 넘는 경우도 9.5%나 됐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양극화로 인한 극도의 경쟁과 긴 구직기간은 사회ㆍ경제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좌절하고 구직의욕을 상실한 청년이 ‘니트(NEETㆍ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취업을 준비해온 조모(28)씨도 그런 경우다. 그도 올해 초까지는 각종 시험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신종 코로나로 기업 공채가 줄줄이 미뤄면서 그 동안 수강했던 학원과 인터넷 강의를 모두 끊었다. 그는 “채용 공고도 씨가 말라 언제 취업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당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머리를 식히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근 올해 말까지 니트족이 127만3,000명으로 늘어 전체 청년 인구(1,223만8,000명)의 10.4%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직장은 부족하고, 눈을 낮춰 비정규직으로 일해도 극히 드물게 정규직이 되는 현실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공정 논란은 지속적일 수밖에 없다. 제2, 제3의 인국공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인국공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 1,900명을 직접 고용한다고 해서 기존 청년들의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크게 보면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라 되레 환영할 일”이라며 “이렇게까지 논란이 된 이유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너무나 심각해진 까닭”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청년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청년층 노동시장 이행 연구’를 한 윤윤규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청년 고용문제는 경제 전체의 일자리 부족보다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발생한다”며 “기존 청년일자리 정책에 중소기업 기술개발지원 등 경쟁력 향상과 이중구조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을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종강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이미 2004년부터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해왔다”며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이 단순히 노동자 개인의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기업과 국가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관점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혜정 기자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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