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참혹 현장' 장기 투입 소방 구급대원 극단적 선택  '순직' 인정

입력
2020.06.28 11:22
재판부 "공무와 사망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


법원이 장기간 구급업무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다 숨진 소방관의 순직을 인정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 김국현)는 사망한 소방관 A씨 유족이  "순직 유족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하라"며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1992년부터 22년 7개월간 소방공무원으로 일하며  12년간 구급업무를 담당했다. 구급업무는 다른 업무보다 현장 출동이 4, 5배 더 잦고, 참혹한 현장에 노출되는 빈도도 연평균 7.8회에 달해 힘든 업무로 꼽힌다.

A씨는 평소 업무 수행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수면장애와 불안, 공포 증상을 호소하다 2010년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2014년 진급하면서 다른 업무를 맡게 돼 밝고 의욕적인 모습을 되찾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구급업무를 맡게 됐다. 구급대원 중 구조 관련 자격 미보유자가 많다는 상부의 지적에 소속 소방서가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을 보유한 A씨를 구급업무로 재배치한 것이다. 

A씨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배우자에게 인사조치 공문을 보여주며 눈물을 흘렸고 종종 죽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만큼 상태가 악화됐다. A씨는 전보 두 달 뒤인 2015년 4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재판부는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공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심신의 고통을 받다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이르러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A씨가 구급 업무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응급구조사 자격증 때문에 계속해서 투입될 수도 있다는 절망감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약이 몸에 해롭다는 말과 직장에 알려질까 두려운 마음에 2013년부터 공황장애 치료를 중단한 것도 증상을 악화시켰다고 평가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사망 원인이 되었다는 인사혁신처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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