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의 골자는 주식 양도소득세 전면 과세와 증권거래세 인하다. 이를 두고 일부 투자자들은 증권거래세를 둔 채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라고 반발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거래세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원칙에 위배되는 세금이기 때문에 양도소득세 전면 시행 이전에 반드시 폐지 일정이 함께 수립돼야 한다”(김병욱 의원)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것은 민주당의 지난 총선 공약이었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선진국 중에는 거래세를 부과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기획재정부는 '폐지'보다는 '유지'를 결론으로 택했다. 세수 사정을 고려해 추가 인하 여지는 있다고 밝혔지만 폐지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수 조원에 이르는 세수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는 양도소득세 과세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메울 수도 있다.
기재부의 이번 결정에는 △초단타 거래에 따른 시장 불안 △외국인 투자자 등에 대한 과세공백 △농어촌특별세 세원 마련 등 좀 더 복잡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재부는 증권거래세를 전면 폐지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시장 안정성 문제를 꼽고 있다. 빠른 인터넷 속도와 자동화된 프로그램을 활용한 ‘1,000분의 1초 단위’ 초단타 매매(HFTㆍHigh Frequency Trading)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다. 거래대금의 0.15%로 남겨 둔 증권거래세가 초단타 투자자들에게는 ‘허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0년 5월 발생한 다우지수의 순간 폭락 사태다. 당시 현지시간 오후 2시 32분부터 약 36분만에 다우지수가 600포인트 이상 빠졌다가 회복됐는데, 바닥을 친 시기에는 전날 종가 대비 998.5%(9.2%)나 빠진 상태였다. 미국 법무부는 순간 폭락은 한 개인 투자자의 초단타 알고리즘 거래가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이 같은 초단타 거래는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골칫거리로 자리잡았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주문과 취소를 반복하면서 6,220차례(847억원) 규모의 허수 주문을 낸 한 외국계 증권사에 대해 시세조종과 시장교란 혐의로 제재를 논의 중이다.
초단타 매매가 가격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 사람이 여러 계좌를 보유한 채 주식을 주고받으며 거래량을 부풀리고 주가를 조작하는 ‘자전거래’도 활개를 칠 우려가 제기된다. 이 같은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한 다른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거래세부터 없애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이 기재부의 입장이다.
해외 금융시장에서도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세금 부과를 통한 투기거래 억제 논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유럽연합(EU)는 앞서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에 일정 수준의 ‘금융거래세’를 붙이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다. 미국의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지난 2월 대선 공약으로 금융거래세 도입을 내세우기도 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25일 브리핑에서 "거래세 유지는 초단기매매나 자전거래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제어장치라는 측면도 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보완제도를 같이 연구하면서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과세 공백이 발생하는 점도 정부의 고민 거리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주식 양도소득세 전면 과세 대상에는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자와 실현 수익 2,000만원 이하인 투자자가 빠져 있다. 수익이 적은 투자자는 소액투자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정부가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조세조약이 있어 자신의 나라에 세금을 내야 한다. 국내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로 해외 주식에서 얻은 수익은 국내에 세금을 낸다.
이런 상황에서 거래세를 폐지하면 면세 혜택을 받는 투자자들이 너무 많아져 과세 형평에 어긋난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임재현 기재부 세제실장은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이 아닌 투자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남겨둔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찬 조세재정연구원장도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인은 조세조약에 따라 대부분 주식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는 반면 거래세는 내ㆍ외국인 간의 차별이 없다”며 증권거래세 유지를 지지했다.
다만 주식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를 한꺼번에 내야 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이중과세'가 된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양도차익 2,000만원 초과 투자자는 과세표준을 계산할 때 증권거래세를 필요경비로 인정해 이중과세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거래세 폐지를 주저하는 현실적인 이유로 농어촌특별세를 꼽는다.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 현재 코스피와 코스닥 기준 0.25%의 거래세율을 2022년 0.23%, 2023년 0.15%까지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는데, 이에 따라 코스피는 증권거래세율 자체는 0%가 된다. 다만 코스피 시장에만 부과해온 농어촌특별세율 0.15%가 남게 돼 최종적으로 0.15%의 세율이 적용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농어촌특별세율을 건드리지 않고 낮출 수 있는 최대치가 0.15%인 셈이다.
정부는 이번 방안에서 코스피에서는 증권거래세 0%, 농어촌특별세 0.15%를 남겨놓고, 농어촌특별세가 없는 코스닥 시장에서는 0.15%의 증권거래세를 남겨 코스피 시장과 동일한 세율을 유지했다.
농어촌특별세는 1993년 다자간 무역협상인 UR(Uruguay Roundㆍ우루과이 라운드) 협정 타결로 농산물 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이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이를 잠재우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세제다. 쌀시장 농ㆍ어촌 기반시설 확충, 농어촌지역 개발 등의 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목적세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기획재정부만의 판단으로 손을 대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농어촌특별세의 대부분을 증권거래세가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018년 걷은 증권거래세는 6조718억원, 주식시장에서 걷은 농어촌특별세는 2조2,038억원이다. 2018년 당시 전체 농어촌특별세 규모(2조9,685억원)의 73.8%에 달한다.
유동수 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금융투자과세체계 개선법안에는 여기에 대한 고민이 일부 담겨 있다. 유 의원은 증권거래세 폐지 법안과 함께 농어촌특별세법 개정안을 함께 발의하면서 “주식 등의 양도에 부과되는 양도소득세의 일정 금액을 농어촌특별세 사업계정에 포함시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