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운명이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또 한 번 변곡점을 맞게 됐습니다. 이 부회장 혐의 관련 검찰의 기소가 타당한지에 대한 평가를 외부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받게 되는 건데요. 심의의견에 따라 앞으로의 검찰 수사·기소 방향이 달라질 수 있어 26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50분까지로 예정된 수사심의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사건 수사와 기소 과정을 점검하고 검찰 밖 각계 전문가로부터 수사 계속, 공소 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등을 심의받는 제도죠. 대검예규인 수사심의위 운영지침은 검찰총장이 법조계·학계·언론계·시민단체계·문화예술계 등 각 분야에서 후보자를 추천받아 150명 이상 250명 이하의 위원을 위촉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위원장이 이 중 15명을 무작위 추첨해 현안위원으로 선정합니다. 그렇게 선정된 이들이 현안에 대해 심의하게 되는 것이죠.
우선 수사심의위가 소집되기 위해서는 사전 절차가 필요한데요. 신청인의 회부 요청에 대해 검찰시민위원회가 수사심의위에 부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야 합니다. 삼성물산은 최근 검찰이 아닌 외부 전문가로부터 '수사 계속 및 기소 여부'를 평가받고 싶다고 요청했고, 교사와 주부 등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위의 부의심의위가 11일 모여 논의했는데요. 과반이 찬성하면서 수사심의위의 점검을 받고 싶다는 이 부회장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부의심의위 때는 검찰과 신청인 양측의 의견서만으로 시민들의 판단을 받았는데요. 수사심의위의 심의의견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될까요? 수사심의위에서도 부의심의위 때와 마찬가지로 검찰과 신청인 측에서 A4 용지 기준 글자크기 12포인트, 줄 간격 200으로 30쪽 이내의 의견서를 제출받도록 되어 있는데요. 부의심의위 때와 달리 위원장 재량으로 쪽수 조정이 가능합니다. 사건 규모를 감안해 이번에는 50쪽씩으로 분량이 정해졌습니다. 총 100쪽의 의견서를 둘러싸고 다투게 되는 셈이죠.
뿐만 아니라 수사심의위에서는 주임검사와 신청인이 현안 위원 앞에서 최대 30분씩 사건을 설명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프레젠테이션(PT)도 하게 됩니다. 각자 발표할 때 상대측에게 밖으로 나가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죠. 현안위원들과 질의 응답도 포함됩니다. 수사기록만 약 20만쪽으로 방대하고 법리적으로도 다툼이 있어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데요.
검찰에서는 수사를 이끌어온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이복현(사법연수원 32기) 부장검사를 필두로 검사 3,4명이, 이 부회장 측에서는 변호인인 김기동(21기) 전 부산지검장과 이동열(22기) 전 서울서부지검장 등이 나올 예정입니다. 쟁쟁한 전·현직 특수통들이 맞붙게 돼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아울러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한 김종중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팀장(사장)과 삼성물산 측 변호인들도 참여할 계획이지만 이 부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으로 전해집니다.
양측 의견을 듣고 위원들끼리 논의를 한 뒤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는 구조인데요. 수사심의위원장은 질문이나 표결에 참여하지는 않고 회의를 주재합니다. 양창수(6기) 전 대법관이 2018년 초대 위원장으로 위촉돼 현재까지 수사심의위를 이끌어왔죠. 그러나 그가 16일 '직무 회피' 입장을 밝히면서 이번 회의에서는 직무대행 선임이 먼저 이뤄질 예정입니다.
양 전 대법관의 회피는 삼성 측과의 인연 때문인데요. 처남이 삼성그룹 산하 계열사인 삼성서울병원장인데다, 이번 사건 핵심 피의자 중 하나인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고교 동창이라는 점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데 따른 것입니다. 양 전 대법관을 대신해 위원장 역할을 현안위원 15명 중 한 명이 임시로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실질적인 표결인원은 14명이 됐고요.
수사심의위 표결은 만장일치를 목표로 하지만, 의견이 엇갈릴 경우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 의견으로 의결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나 양 위원장의 회피로 표결 인원이 짝수가 되면서 심의결과가 '7대 7' 동수로 갈릴 가능성도 생겼죠. 만약 동수가 나오면 사실상 부결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수사 계속 및 기소 여부 등 판단은 다시 검찰의 몫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결정된 심의의견은 어떤 효력을 갖고 있을까요? 수사심의위 운영지침에는 '주임검사는 심의위 심의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는데요. 강제성은 없습니다. 권고성 효력에 그치죠. 다만 아무래도 이번 경우는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이 크다는 점에서 여론에 미칠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이는데요. 검찰 측에서는 수사심의위 심의결과를 반영해 기소, 불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방침을 내비치기도 했죠.
검찰 입장에서는 기소가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면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 했다는 비판을 받게 돼 부담이 상당할 텐데요. 반대로 기소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수사의 정당성에 힘이 실리게 될 겁니다. 과연 수사심의위는 그동안 검찰의 이 부회장 관련 수사를 어떻게 평가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