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소설가 아모스 오즈에 따르면, 비극은 두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 해결책이 있고, 안톤 체호프 해결책이 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결말에서는 무대에 시체들이 나뒹굴고, 아마도 저 높은 곳 어딘가에 정의가 어른거릴 것이다. 반면에 체호프의 비극에서는 모든 인물이 환멸을 느끼고, 씁쓸해지고, 상심하고, 실망하고, 철저히 망가진 상태로 끝나지만, 여전히 모두가 살아 있다. 나는 셰익스피어식이 아니라 체호프식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비극이 해결되길 바란다.”
한반도가 아직은 독일의 길을 뒤따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은 자주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독일처럼 한번 개시된 평화 대화가 분단 극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평화협상의 좌절이 오해의 증폭과 대결의 빌미가 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더 눈에 밟힌다. 만성적인 적대와 폭력 충돌은 환멸과 씁쓸함, 상심과 실망을 켜켜이 쌓았지만 평화운동에 헌신했던 오즈는 갈등의 폭발을 통해 선과 악이 승부를 겨루어 얻는 정의로운 평화가 아니라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공존을 모색하는 길에 의지했다.
체호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일부도 자살하거나 결투로 죽기에 오즈의 말이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의 삶과 세계는 그의 가공인물들처럼 선과 악으로 딱히 나눠지지 않고 저마다의 사연으로 넘치기에 갈등의 해결도 딱히 선악을 가르는 정의나 소통을 통한 상호이해에 기초하기 어렵다. 오즈는 체호프에 기대 모두가 애처롭고 애잔하지만 살아남는 길을 갈등의 마지막 비책으로 보았다. 화사한 신세계의 기대가 아니라 우중충한 현실을 감당하며 삶의 의지를 세우는 인내가 더 중요하다는 말일 테다.
체호프의 작품에는 삼각관계가 유독 자주 나온다. 갈등의 해결이 화사하지 못한 이유도 주인공들이 애증의 삼각관계로 심히 얽혀서이다. 한반도 분단갈등은 삼각관계로 정착되었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은 한반도 긴장과 접근의 관계를 삼각으로 구성한다. 삼자는 고유한 입장과 나름의 사연을 갖고 서로를 경계하지만 또한 특별한 필요와 저마다의 이익에 따라 다가간다. 한반도 비평화의 문제를 냉전 시대 전통적 동맹관계의 대결 문제로 보기를 잠시 그치고 새로운 종류의 특별한 삼각관계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전쟁과 적대가 지배했던 과거에는 미국이 상당기간 한국의 대북 적대 행위를 자제시켰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의 북진 통일의지를 억눌려야 했고 박정희 정권의 대북 군사 보복의지도 달래야 했다. 1970년대 미국이 중국과 데탕트 외교를 꽃피웠을 때 박정희 정부는 데탕트를 오히려 위기로 간주했다. 심지어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간소하게나마 조문을 표했지만 김영삼 정부는 조문 논쟁을 공안정국으로 전환시켰다.
반면, 1980년대 후반과 2000년대 그리고 최근 한국 정부가 북한과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했을 때 미국은 일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우려하거나 방해했다. 심지어 미국은 한국 정부나 주민의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을 겨냥한 전쟁 위기를 조성했다. 반면, 북한은 자주 한미 관계의 이반을 노렸고 ‘북남관계 발전’을 유지하다 ‘통미봉남’에 갇히기도 했다.
이제 삼자 모두 ‘분단 히스테리’의 유발자이면서 희생자인 척하고 있다. 씁쓸하고 환멸만 남고 실망하고 상심만 크다. 그런데 분단 독일에서도 삼각관계는 복잡했다. 주로는 삼각의 한 축이 소련이기도 했지만, 1960, 1970년대 동방정책 발진기에는 미국이 따로 각을 세웠다. 소련과 동독을 비롯한 동유럽과의 화해협력을 둘러싸고 미국과 서독의 관계가 간단치 않았다.
브란트는 1969년 서독 총리가 된 후 계속 미국 정부에게 자신의 평화정치 구상과 계획을 소상히 알려주었다. 서독이 가장 중요한 동맹국가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과 화해하기도 어려웠고 동독과 협력하기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정치를 위해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닉슨 미국 대통령과 그의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국제적으로 데탕트를 표방하며 소련과 대화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은 브란트의 평화정치에 의구심을 가졌다. 닉슨 같은 미국 보수주의 정치가에게 독일 사민주의 정치가들은 이미 충분히 “빨갰다.”
닉슨은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보았고 브란트 같은 사민주의들을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 망명 집안 출신인 키신저조차도 초기에는 의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미 1960년대 중반 키신저는 브란트와 바르의 동방정책 구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상과 실천은 차원이 달랐다. 키신저는 서독이 동방정책을 통해 ‘핀란드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당시 핀란드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유지했지만, 외교와 안보는 중립을 추구하며 사실상 미국보다는 소련에 더 가까웠다.
북유럽의 소국 핀란드와는 달리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경제대국 독일의 중립화는 미국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웠다. 특히 브란트의 참모 바르는 미국 정치가들에게 민족주의자로 보였고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에서 중립주의를 추구하는 인물로 의심을 받았다. 바르가 소련에 너무 가깝다는 불평이 높았다.
물론, 브란트와 바르의 동방정책은 핀란드화와 거리가 멀었다. 다만 1969년 사민당 주도의 새 서독 정부 지도자들은 이제 더 이상 패전국의 대표가 아니라 자주적인 독일인들의 대표로서 자기결정권을 부각하고 싶었다. 심지어 브란트는 이미 인도의 네루와도 친교를 쌓으며 민족의 자기결정권을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1969년 10월 21일 아직 브란트가 총리로 취임하기 직전 바르는 미국을 방문해 새 정부의 외교 구상을 알렸다. 바르는 키신저와 그의 참모들과 대화하면서 “당신들은 이제 우리가 더욱 불편해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화 상대자들과 견해가 갈릴 때 바르는 “저는 여기에 당신들과 상의하러 온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당신들에게 우리 계획을 미리 알리려 왔을” 뿐이라며 단호했다.
브란트 총리는 동방정책의 기조를 담은 신정부 선언의 핵심 내용을 미국 측과 ‘사전에 논의’하지 않고 다만 ‘미리 알려’준 뒤 공표했을 뿐이다. 미국 외교관들은 서독의 동방정치가들이 앞선 서독 정치가들과 상당히 다르며 독일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내세움을 보고 당혹스러웠다. 서독 동방정치가들의 민족적 자의식과 자주적인 정책 결정에 미국 정치가들은 계속 “불편”했다. 세계열강이 아닌 한 어디서든 평화정치의 근간은 자기결정권이었다.
물론, 당시 미국 정부는 데탕트를 지지했기에 서독의 동방정책을 노골적으로 만류할 수는 없었다. 1971년 베를린 협정을 위한 협상에서 서독은 미국과 긴밀히 협력했다. 키신저는 브란트와 바르가 동방정책에서 성공을 거두자 초기의 불신과 의심을 거두고 오히려 그들을 높이며 지지를 표명했다. 곧 미국은 서독과 서유럽이 만든 평화정치의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 바빠졌다.
동시에 키신저는 바르를 통해 소련의 입장과 동유럽의 상황에 대해 미리 정보를 얻고자 했다. 둘은 점차 경쟁자에서 협력자가 될 수 있었다. 다만 닉슨은 1971년에도 브란트를 만나 미국은 서독의 동방정책을 전면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지 않을 뿐이라고 퉁명스러웠다. 구체적인 “방법과 전술은 전적으로 서독 정부의 몫”이니 “그것에 대한 책임도 서독 정부가 져야한다”고 경고했다. 역사가 보여주듯, 그것은 독일인들에게 독이 아니라 복이었다.
서독의 평화정치가들이 미국의 우려와 의심을 극복한 것은 단호한 평화의지와 명확한 평화구상이었다. 이미 전망과 내용에서 서독 평화정치가들은 미국 외교 전략가들을 앞질렀다. 하지만 자기결정권에 대한 의지가 더 결정적이었다.
동맹은 안보를 위해서 필요할지 모르지만 평화를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평화정치를 위해서라면 한반도 분단 대결이 삼각관계임을 전제해야 한다. 역사도 그랬고 현실도 그렇다. 한미워킹그룹 뿐만 아니라 대북 협력의 족쇄를 채우는 모든 구상과 실천을 물려야 한다.
한국의 평화정치가들이 자기결정권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삼각의 한 축으로 각을 세우는 것에서 새로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만 되도 우리는 이 걷잡을 수 없는 환멸과 상심을 좀 위로받을지 모르겠다. 평화정치의 방법과 전략, 성과와 책임도 한반도 주민 모두의 것이 되는 길을 더 찾자. 그러면 오즈가 비감하게 말한 체호프식보다는 조금 더 나은 과정과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