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9ㆍ회사원)씨는 장마가 본격화한 27일 대구지역 한 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결혼 비수기이지만, 그는 한 달 전 마지막 남은 한 자리를 겨우 예약했다. 설 전 4, 5월로 생각한 결혼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미뤘는데 가을엔 2차 유행이 올 수 있다는 방역당국의 경고에 부랴부랴 날을 잡았다. A씨는 "유행 초기만 해도 가을이면 숙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갈수록 모든 게 불확실해졌다"며 "자칫 해를 넘길지도 몰라 한 달 전쯤 급하게 날을 잡았다"고 말했다.
대구지역에 때아닌 장마와 폭염 속 결혼식이 러시다. 신종코로나 때문에 식을 연기한 예비 신랑신부들이 자칫 가을에 또다시 신종코로나가 유행, 식을 올리지 못할 것을 우려해 급하게 날을 잡으면서 벌어진 기현상이다. 무더위가 시작하는 6월은 물론 7, 8월 폭서기에도 대구지역 주요 예식장은 만원이다.
웨딩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중순 신천지발 신종코로나 확산으로 실종된 결혼식이 5월 6일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이후 조금씩 살아나더니 윤 4월(양력 5월23~6월20일)이 끝나면서 폭증세를 보이고 있다. 9월 이후 성수기는 물론 전통적인 비수기인 6~8월도 주요 시간대는 예약이 만원이다.
홀이 2개인 수성구 호텔인터불고는 7, 8월에도 빈 자리가 없다. 갑자기 취소하는 경우가 아니면 연말까지 날 잡기가 어렵다는 예식장 측 설명이다. 수성구 라온제나, 동구 퀸벨, 북구 창조경제혁신센터 중앙컨벤션홀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는 "원래 여름은 예식업계 비수기인데, 코로나 덕분에 밀린 결혼식이 몰리면서 홀이 만원"이라며 "2월에는 예약 취소ㆍ연기로 진땀을 뺐는데, 5월부턴 반대로 급하게 날을 잡는 신랑신부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2~4월 대구지역 신종코로나 유행으로 식을 연기했으나 가을 성수기에 날을 잡기 어려워 한여름에도 몰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완전 취소할 경우 예식장은 물론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위약금 문제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 호텔 예식업부 관계자는 "예년 여름철과 비교하면 예약률이 2배 이상"이라며 "보통 6월부터 추석 전까지는 비수기인데 올해는 가을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자는 게 대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뒤늦게 날을 잡으려는 예비 신랑신부들은 인기 있는 예식장은 원하는 날을 잡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빈 시간대가 있으면 억지로라도 하거나, 내년으로 미뤄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 2월 식을 올릴 예정이었던 한 예비 부부는 "7월로 식을 미루기로 했는데, 2월 말에 이미 인기 시간대는 다 차버렸다"며 "우여곡절 끝에 7월12일 오전에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여름 결혼식이 붐을 이루지만 업계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게다가 일부 업소는 여전히 예약률이 저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식장 입장에서는 3, 4개월 공치다가 조금 풀렸지만 올 한 해 농사는 망쳤다고 아우성이다. 연관 업종은 더 심각하다. 예식사진 전문업소들은 8, 9월 결혼 비수기에 다른 예약을 받아 벌충하는데, 밀린 결혼식 때문에 다른 일을 잡지 못해 바쁘기만 하고 수입은 별로라며 볼멘 소리를 냈다. 신혼여행도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제주나 동해, 서해로 향하면서 여행업계도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업계 관계자는 "홀과 식당의 좌석 수를 줄이고, 입구부터 체온 측정, 인적사항 기록 등 만일을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며 "예비 신랑신부 상당수가 가을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덥더라도 진정세를 보이는 이때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