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 美 주재원 체류 연장ㆍ증원ㆍ교체 막혀 냉가슴

입력
2020.06.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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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취업비자 중단에 "사업 위축될라" SK이노, 美 공장 건설 차질 우려



“당장 피해는 크지 않겠지만 길어지면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외국인에 대한 미국의 갑작스런 비자 발급 중단 소식이 전해진 23일 국내 주요 기업 내부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특정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취업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을 서명, 취업 주재원 등의 장기체류가 올 연말까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신규 발급 금지 비자는 △고숙련 근로자에 대한 H-1B △이들의 배우자에 대한 H-4 △해외에서 미국으로 직원 전근 시 사용되는 L-1 △비농업 분야 임시취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H-2B △문화교류와 관련된 J-1 가운데 특정 비자에 등에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은 그간 미국 현지에 생산시설과 영업망을 구축하면서 주력 시장으로 공략해왔던 터라, 이번 비자발급 중단 소식은 악재일 수 밖에 없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공식 가이드라인이 현지 법인에도 내려오지 않아 현황 파악중”이라며 “최악의 경우 연내 체류 기한이 만료되는 주재원들은 국내에 들어와야 해, 사업 위축은 피할 수 없게 됐다”고 걱정했다. 한 석유화학업체 관계자는 “생산설비를 증설로 주재원을 더 보내야 했는데, 갈 길이 막혀 버렸다”며 “미국 법인과 회의를 벌이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주재원 교체 계획을 세워뒀던 일부 기업에선 현지 체류 연장 등의 방법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주재원 교체는 연말에 이뤄지고 장기체류 주재원 비자(L-1)는 기본 3년짜리로, 최대 7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연장이 안 된다면, 단기출장을 기존처럼 이스타(ESTA)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활용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산시설 확장 등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던 기업들의 걱정은 크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미 조지아주에 9.8GWh 규모 배터리 1공장을 2023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데, 조만간 내부 시스템 조성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전문인력 입국이 필수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보통 공장 내부에 조성되는 배터리 설비는 국내 전문기술자들에 의해 마련되기 때문에 내년까지 입국 제한이 이어지면 공장 조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전했다.

전자제품 생산이나 판매 조직을 미국 현지에 둔 국내 전자업계도 애를 태우기는 마찬가지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비교적 단기간이라고는 하지만 현지 법인과 전략적인 협의 등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주재원 교체 등도 제 시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회사 전반적인 인사 시스템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불똥은 미국 취업이나 이민을 염두에 둔 이들에게도 튀고 있다. 현재 미국 대학에서 유학중인 이민지(가명)씨는 “미국인들에게 더 많은 취업 기회를 준다는 명분에서 추진 중인 이번 조치로 미국 출국에 어려움은 겪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염려했다. 한 투자이민업체 관계자는 “이미 대사관 인터뷰 등이 전면 중단돼 작년보단 이민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김영훈 기자
임소형 기자
박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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